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고 3일 더불어민주당이 밝혔다. 응급수술을 받은 뒤 약 24시간 만이다. 위급  상황은 벗어났고, 집중적 치료와 관리를 요하는 상태도 넘어섰다는 뜻이겠다. 물론 지속적 가료는 필요하지만 안심해도 될 단계라고 이해가 된다.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그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을 위해서도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정당의 대표가 흉기 테러를 당하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범인이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니 앞으로 조사를 하면 범행의 배경과 과정 등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짐작되기로 정치적 목적 하에 모의→준비→실행된 조직적 범죄일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소위 ‘정적 제거’를 위한 테러를 저지를 생각 따위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소위 ‘개딸’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배후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 상상력의 빈곤이 한심할 정도다. 이런 인사들을 극렬 지지세력으로 갖고 있다는 자체가 이 대표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환자 상태 브리핑을 왜 민주당이?

야당 내의 파벌싸움이 빚은 ‘살해 기도 사건’이라는 추측도 말이 안 된다. 정치를 아예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르거나 저지르게 하겠는가. 그러니 한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 동기에 의한 범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충동적이기보다는 계획적인 칼부림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한동안 이 대표 주변을 맴돌았다니까.

언론들이 ‘혐오정치의 칼날’, ‘혐오정치의 폭력적 표출’ 등의 레토릭으로 사태를 설명하려 하던데, 적절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극우 사상을 가진 어느 개인의 좌파정치지도자에 대한 증오의 표출이라고 단정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 현상을 너무 극화시키면 진실은 더 멀어진다. 일단 개인적인 감정이 극단적 행위를 부추겼다고 보는 게 그나마 무난할 것 같은데 이 또한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알 일이다.

의문은 오히려 사건 발생 후의 민주당 처사에 대해 더 생긴다. 이 대표는 목 부위에 2cm의 자상(刺傷: 칼 따위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을 입었다고 한다. 민주당 총선 영입인재 5호인 강창희 전 의사협회 부회장이 3일 그렇게 밝혔다. 내경정맥이 60%이상 손상된 치명적 부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강 전 부회장이 의료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발표는 직접 수술한 의료진이나 병원 대변인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제까지 부산대 병원에서도 서울대 병원에서도 공식 발표가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서울대 병원의 경우 수술 당일 오후에 브리핑을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병원 관계자 말로는 “이 대표를 치료한 의료진이 브리핑을 하지 않고 민주당 쪽에서 맡기로 결정했다”는 것인데 브리핑을 위임하는 것 또 무슨 경우인가. 더욱이 환자는 흉기 테러를 당한 거대정당의 대표인데!

브리핑을 대신한 강 전 부회장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치명적 공격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었다고 할 수 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사건 당일 부산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응급실 앞에서 “경정맥 손상이 의심된다. 자칫 대량 출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발표했었다.

“아무나 구급헬기 태워줍니까?”

그곳은 최고 등급의 외상센터였는데, 이 대표는 굳이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돼서 수술을 받았다. 정말 위중한 부상이었던 게 맞느냐는 의심을 사지 않을 수없는 선택이었다. 당 측은 가족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랐다고 했다. 가족들의 요구가 의료적 판단에 우선하는지 민주당이 대답해줘야 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송하는데 2시간 20분쯤 소요됐다고 한다. 그 시간을 감당할 정도였다면 민주당이 애초에 환자의 상태를 부풀렸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대표는 헬기로 옮겨졌다. 구급 헬기는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특혜라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대 치료가 가능하나 환자 사정으로 전원. 구급헬기 이용? 왜? 일반인도 이렇게 ‘서울대 가자’하면 119에서 헬기 태워줍니까? 수용 가능함에도 환자 사정으로 전원 원하는 경우 119헬기가 이용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까? 일반 시민들도 앞으로 이렇게 119헬기 이용할 수 있는 건가요? 심근경색으로 당장 시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환자 빠른 치료 위해 119헬기 이송 요청을 했더니 ‘의료진 안 타면 불가하다’던 119측도 뭐라고 답변을 좀 해보세요.”

속초의료원 여한솔 응급의학과장이 2일 페이스북에 쓴 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서울대까지 헬기를 타고 간다면 중증이 아닐 가능성이 정말 높다. 중증 환자도 아닌데 헬기를 타고 간다고 하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의정부 백병원 양성관 가정의학과장도 이렇게 지적했다. 

민주당은 대답해야 한다. 어느 쪽이었는가? 이 당의 강선우 대변인이 3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반박형 해명을 했다. 

위중했다면 부산서 수술했어야지

“이 사건은 목 부위에 살해 의도를 가진 피의자로부터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었다. 그게 본인이랑 가까운 사람, 가족이라고 생각해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었으면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부산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게 옳았다. ‘가까운 사람‧가족’이든 아니든 구급 헬기 이용에는 나름의 수칙이 있을 것이다. 그걸 철저히 지켰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민주당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상황에 있었더라도 헬기 이송이 가능했을까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한다. 이 대표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에겐 ‘가까운 사람’도, ‘가족’도 있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이 대표는 특혜를 거부했어야 했다. 정신은 멀쩡했다지 않는가. 
이 대표는 그간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법제화를 주장해 왔다. 현재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는 민주당 단독입법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문화일보, 1.3). 정말 지역의료 활성화를 바라기나 하는 건가?

의문은 이뿐이 아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오전 비상 의원총회를 가진 후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 중에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사건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해야 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나 축소, 왜곡 시도가 일어난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찰은 그러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이다. 최대 의석을 가진 정당이라면,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기 위해서 변칙과 꼼수까지 동원할 정도로 경찰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컸던 정당이라면, 경찰을 이런 식으로 위협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수사진을 격려하고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의심부터 하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