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벨기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이륙하는 미라지-2000 전투기[The Diplomat 캡처]
2017년 벨기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이륙하는 미라지-2000 전투기[The Diplomat 캡처]

국제방산시장에서 '진상'으로 자리매김한 인도네시아가 새해 벽두부터 이를 다시 증명했다.

4.5세대 한국형 초음속전투기 KF-21(보라매)의 공동개발국으로 1조원가량의 사업분담금을 미납한 인도네시아가 카타르가 사용 중인 프랑스제 중고 미라주 2000-5 전투기 12대에 대한 구매연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CNN 인도네시아와의 회견에서 "재정여력 부족으로 미라주 전투기 구입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어 프랑스로부터 라팔 전투기를 도입하기 전까지 현재 운용 중인 미국제 F-16 전투기와 러시아제 수호기 전투기를 개조해 전력공백을 메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F-16 전투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F-16 전투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또 다시 공군 전투기 도입사업과 관련해 갈짓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6월 카타르가 운용하는 중고 미라주 2000-5 전투기 12대를 7억9200만달러(1조385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당시 이 계약을 강력하게 추진한 장본인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다음달 14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로 평가된다. 프라보워는 지난해 8월에는 미 보잉사와 F-15EX 24대 및  S-70M 블랙호크 헬기 24대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0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0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같은해 2월에는 프랑스와 81억달러(10조8000억원) 규모의 라팔 전투기 42대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싹쓸이 쇼핑' 행태를 보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미라주 중고 전투기 도입 연기 결정을 한 것과 관련해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도 정적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굳이 비싼 돈을 주고 '고물' 전투기를 들여와야 하느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인도네시아가 장비현대화를 빌미로 올해 국방예산을 250억달러(32조8000억원)으로 전년대비 20%나 증액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해군의 라팔 전투기[연합뉴스 자료 사진]
프랑스 해군의 라팔 전투기[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방예산을 늘렸는데도 재정여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인도네시아의 이번 결정은 인도네시아와 2016년 계약 체결 이후 보라매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약의 핵심은 한국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각각 60%와 20%의 개발비를, 나머지 20%는 인도네시아가 부담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는 시제기 한 대와 관련 기술을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자국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1호 국산전투기 KF-21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내년부터 양산[방위사업청 제공]
1호 국산전투기 KF-21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내년부터 양산[방위사업청 제공]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1조2694억원의 개발비 중 2783억원만 납부하고 9911억원은 미납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초기에는 경제여건 악화 등을 내세웠으나 최근에는 아예 납부 계획 통보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관측통은 인도네시아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프라보워의 대선고지에 좀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풀이한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KF-21 공동개발사업도 주요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인도네시아는 국방부와 군사 전문매체 조나 자카르타(Jona Jakarta) 등을 통해 KF-21 '깎아내리기'에 열성을 보여왔다.

"미국이 KF-21 사업에 인도네시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행동에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조나 자카르타 기사[Zona Jakarta 캡처]
"미국이 KF-21 사업에 인도네시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행동에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조나 자카르타 기사[Zona Jakarta 캡처]

KF-21 전투기 분담금 납부 건과 관련해서는 기대치 이하라는 식으로 폄하하면서 '배째라' 방식을 옹호해왔다.

복수의 관측통은 프라보워가 재정여력 부족을 이유로 인도네시아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KF-21 전투기 분담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연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시 말해 KF-21 전투기 수출시장 확대에 부심하는 한국을 압박, 지금보다 훨씬 유리한 계약조건을 변경함으로써 치적을 쌓아 대선 승리를 이루려고 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 4호기가 지난 5월 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격납고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 사진]
한국형 전투기 KF-21 시제 4호기가 지난 5월 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격납고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 사진]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의 이런 행태에 한국이 더는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다. 

방위사업청과 KAI가 인도네시아를 '손절'한 후 한국이 독자개발하거나 폴란드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KF-21에 큰 관심을 보여온 국가들과 새판을 짜는 게 좋다는 지적이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행태에 가슴앓이를 계속하지 말고 차라리 사업에서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