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내게는 이 계절이면 떠오르는 동요가 있다. 「겨울나무」다. 부르고 싶어진다. 어릴 때 자주 불렀던 이 노래에 담긴 공간과 정서가 이제는 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랫말을 여기에 옮겨 한 글자, 한 글자, 가슴에 담아보고 싶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1절)//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2절)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

 무엇보다 의인화 수법을 통해 묘사된 겨울나무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겨울나무가 ‘휘파람’을 불고 있다니. 이 동화적 상상력이 자꾸만 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는 매력으로 작동한다.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1절),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2절)의 반복은 메아리 같다. 여운이 되고 있다. 그것은 차갑게만 느껴지는 겨울바람이 ‘휘파람’을 유발하는 매개체로 작용하여, 겨울나무는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겨울나무와 겨울바람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 함께 살아가는 동행이 되고 있다. 여기에 노래의 깊이가 있고 울림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노래를 다시 부르고 싶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휘파람’을 부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휘파람’을 낼 수 있게 배려하고 도와주는 일이다. 상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바람 소리로 다가서는 일이다. 혹은, 스스로 외로움을 견뎌내며 늘 ‘휘파람’을 불 수 있다는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또 한 편의 인용시를 읽어 보자.   
 
 추위에 떨지 말라며/ 절대로 얼어서는 안 된다며/ 갈참나무의 발을 덮어주려고/ 일제히 몰려가는 낙엽에게는/ 무언가를 따뜻하게 데우려는 인간미 같은 것이 있다/ 체온이 있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겨울의 독서」 전문 (오석륜, 『종달새 대화 듣기』, 시인동네, 2022) 
 
 겨울나무와 겨울바람, 이 양자의 동행과 함께 이 계절 내게 관심 있게 다가온 것은 겨울나무와 낙엽의 동행이다. 시에서 감지되는 주된 정서는 갈참나무가 낙엽과 함께 있기에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 “갈참나무의 발”을 데우려는 낙엽 또한 갈참나무의 체온을 지켜주겠다는 간절함으로 쓸쓸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의인화 수법으로 서술한 “무언가를 따뜻하게 데우려는 인간미 같은 것이 있다/ 체온이 있”기에 낙엽은 갈참나무와 함께 봄날을 기약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지금은 차디찬 겨울바람이 부는 한겨울. 이 계절에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 수 있게 그에게 바람 소리가 되어 다가서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 얼지 않으려고 늘 휘파람을 불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존재들을 따뜻하게 품으려는 온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