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지 8일 만인 10일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했다. 상처부위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하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만하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계획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고자 벌이는 흉기 공격은 누가 누구를 겨냥한 것이든 만행(蠻行: 야만스러운 행위)이다. 그런데 잦지는 않지만 잊을 만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일개 시민으로서도 부끄럽고 두렵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 우리 정치가 언제부터인가 절망을 잉태하는 죽임의 정치가 되고 말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모두 되돌아보면 좋겠다.”

조직적 정치테러로 몰고 가려는가

이 대표가 퇴원 후 서울대 병원 앞에 모인 지지자들과 취재진 및 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된 것 자체가 안도감을 준다. 다만 이 대표가 자신의 피습에 대해 너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의 피습이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가 초래한 사건으로 보이진 않는다. 

“재판 연기로 이 대표가 처벌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부산경찰청 수사본부가 10일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힌 김 모라는 사람의 범행동기다. 본인이 그렇게 진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쟁 같은 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하기는 무리다. 범인이 특정 개인에 대한 불만을 폭력으로 표현한 것, 그러니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범죄사건이라고 보는 게 더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존중하고 공존하는 정치로 복원되고 희망 있는 나라로 우리 함께 갈 수 있다면 남은 제 목숨이 없어진들 뭐가 그리 아깝겠냐.”

이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비장감이 묻어나는 메시지다. 개인적으로는 기사회생이었다는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이런 표현이 사건을 지나치게 정치화함으로써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세력에 의한 정치테러라는 의혹을 확산시키는 신호가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5월 20일 오후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지충호라는 사람이 휘두른 커터에 얼굴을 심하게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귀 아래부터 오른쪽 턱 바로 윗부분까지, 길이가 11cm, 깊이는 최소 1cm에서 최고 3cm에 이르는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은 상처를 손으로 감싸 쥐었으나 쓰러져 눕지는 않았다. 

그 오랜 후, 그러니까 2015년 6월 27일 성남시장이던 이 대표는 트위터 등 에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시나요? 기회공평한 세상, 꿈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원하시나요? 커터칼..관심 기져주세욤.^^”

“컷터칼도 계속 키우면 청룡언월도 보다 더 크고 날카로워지겠지요. 컷터칼이 언월도 되는 날까지..같이가요.”

그리 위중했다면 부산서 수술하지

“저는 정치에서 진보 보수 나누지 않습니다. 옳으냐 그르냐, 바람직하냐 아니냐만 따질 뿐.”

지금 와서 그 글을 읽는다면 이 대표 자신도 섬뜩할 것이다. 이런 저주의 말을 현직 시장이 (^^)표시까지 붙여가며 올렸었다. 커터가 청룡언월도가 되는 날까지 같이 가자고 (아마도) 당시 대통령과 정권을 조롱한 이 글은 ‘옳으냐 그르냐,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가른다면 어느 쪽이 될까? 

그래서 말인데, 이 대표가 서울대 병원 앞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것이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민주당을 이끌면서 22대 국회의 판도를 결정짓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거대정당의 우두머리이니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그 심성이 아주 달라졌다는 것을 국민에게 확인시키는 게 우선이이라고 여겨져서 하는 말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정쟁적이다. ‘당대표 테러대책위원회’의 간사인 박상혁 의원은 10일, “국민의힘 출신 태극기 부대원의 범행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한 결과 발표”라며 “무엇을 위한 신상 공개이고 무엇을 위한 당적 은폐인가. 결국 실패한 수사라고 평가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알고 있다면 공식적 공개적으로 밝힐 일이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아닌 양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태극기 부대원의 법행’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집단적 조직적으로 범행을 기도하고 가담했다는 뜻인지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상처의 크기를 두고도 민주당은 ‘1cm 열상’ ‘1.5cm 열상’이라는 것은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1.4cm 자상’이고 눈으로 봤을 때는 ‘2cm의 창상 또는 자상’이라며 경찰 소방당국을 싸잡아 비난했었다. 그러니까 대단히 심각한 상태였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환자를 서울로 이송해서 수술하겠다고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 자신이라도 퇴원하면서 ‘부산대병원→서울대병원’ 잔원을 고집함으로써 사건 발생 5시간이 넘어서야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줬어야 했다. 구급헬기를 동원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태였던지 그건 아니었지만, 거대정당 대표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예우로 여겼던 것인지도 설명이 필요했다. 

‘양심 때문에’ 탈당한 민주당 의원들

이 대표가 퇴원한 날 민주당의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소속의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이 당을 떠났다. 이낙연 전 대표는 11일, 즉 오늘 탈당한다고 예고했다. 탈당 3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방탄·패권·팬덤 정당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이들은 “우리가 이 길을 가겠다고 결정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양심 때문”이라며 “이 비정상 정치에 숨죽이며 그냥 끌려가는 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의 다른 의원들 가운데서도 양심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에 저항하지 않고 붙어 있는 이유는 공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공천은 곧 정치생명일 터이다. 

‘원칙과 상식’의 멤버였던 윤영찬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 직전 당 잔류로 돌아선 까닭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는 그간 탈당 의원들과 함께 ‘이재명 체제’를 비판하며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할 것처럼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 쏙 빠져나갔다. “민주당을 버리기에는 그 역사가, 김대중‧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하다”는 말을 했던데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인가.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 예정이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성희롱 발언으로 당 윤리감찰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처지가 된 게 윤 의원의 변심을 촉발한 이유일 것이라는 추측들이 우세하다. 그런데 어쩌나 현 부원장에 대해 이 대표는 병상에서도 걱정을 해준 모양이던데? 이 대표가 정성호 의원에게 문자로 징계수위를 물었고, ‘컷오프 대상’이라는 대답에 “너무 심한 것 아닐까요?”라는 답을 보냈다. ‘강성 친명계’인 현 부원장이 구제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반면에 윤 의원 공천장은 날아가고….

어쨌든 민주당 이 대표, 권력동기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온갖 혐의로 재판에 불려 다니고, 당내 비명계 인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퇴진압력을 받고 있으면서도 당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위원장직 수락연설을 통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이 대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그건 그 집안일이고, 우리 집 법도는 달라.”

이런 배짱일까?

그가 끝까지 틀어쥐고 가려는 것은 당권뿐이 아니다. 총선 공천권도, 국회 재진입권(지역구 당선이 불투명한 상황이 되면 비례대표로라도)도 확실하게 움켜쥐고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차기 대권을 장악하려면 이 길 밖에 없다는 계산이 시키는 행동일까? 이중 하나라도 놓치면 자신은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심각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어느 쪽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대단한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