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LG생활건강 제품을 다시 로켓배송으로 판매하기로 했다. 2019년 4월 납품 협상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면서 거래를 중단한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갈등을 봉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는 정부가 쿠팡과 같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를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해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 이하 플랫폼법)을 추진 중인데, 쿠팡이 이를 의식해 거래를 재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최근 중국발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안방을 뺏길 수 없다는 쿠팡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쿠팡.(사진=연합뉴스)
쿠팡.(사진=연합뉴스)

17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과 LG생활건강은 거래를 재개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쿠팡 로켓배송을 통해 LG생활건강의 생활용품(엘라스틴·페리오·테크 등), 화장품(오휘·숨37·더후 등), 음료(코카콜라 등)를 다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두 회사는 앞서 2019년 4월 납품 협상 과정에서 플랫폼 수수료와 납품 단가와 관련해 갈등을 빚으면서 거래를 중단했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쿠팡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2021년 공정위는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101개 납품 업체에 최저가 보장 정책의 손실 최소화를 목적으로 갑질을 했다"며 시정 명령과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쿠팡은 이듬해 공정위를 상대로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한 판결 결과는 오는 18일 나온다. 

두 회사의 거래 재개는 공정위 결과 발표 일주일을 앞두고 결정됐다. 이 시기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쿠팡이 현재 공정위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을 의식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플랫폼법'은 매출액,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장별로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경쟁사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 최혜 대우 요구 등을 제한하는 규제법이다.

즉, 쿠팡이 공정위 판결 결과로 갑질 사업자로 낙인찍힐 경우 플랫폼법 시행 이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거래 재래 등의 방식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 재개를 위해서는 두 회사 간 협상 과정이 필요한 만큼 플랫폼법을 의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LG생활건강에 앞서 4년간 거래를 중단했었던 크린랲 역시 거래를 재개했고, 쿠팡과 LG생활건강도 지난해 1월부터 협상을 시작해 연말이 돼서야 거래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내·제조 유통사의 '반(反) 쿠팡연대'가 견고해지고 있고, 최근 중국발 이커머스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쿠팡이 갈등을 겪는 업체와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반쿠팡연대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쿠팡과 거래하지 않는 여러 제조사가 CJ제일제당과 신세계그룹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고, 최근 11번가가 오픈마켓 판매수수료와 관련해 쿠팡이 표시광고법과 전자상거래법을 어겼다고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오픈마켓까지 연대에 참가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알리 등 중국발 이커머스가 국내 온라인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와이즈랩·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알리의 한국인 앱 이용자 수는 613만명으로 전년 동기 297만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알리는 올해 한국 내 물류센터 건립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 물류센터가 생기면 현재 5일 걸리던 배송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된다.

알리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국내 제조사들도 잇따라 입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5개 브랜드에 불과했던 국내 배송은 올해 1월 기준 17개 브랜드로 3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쿠팡에서는 구할 수 없는 상품을 취급하는 플랫폼이 점차 늘어나자, 쿠팡은 소비자 확보 및 상품 구색을 갖추기 위해 제조사와의 갈등을 빠르게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당연히 쿠팡은 반쿠팡연대나 중국발 이커머스를 신경 쓰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거래 재개는 이와는 무관하게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상품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LG생활건강과의 거래재개에 대해 "고객들의 고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 감동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