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당무에 복귀했다. 피습 사건 후 15일 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날선 소감을 피력했다.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 정도면 망상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이상한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칼로 죽여 본다? 누가 죽여 본다는 건가. 제가? 국민의힘이? 아니면 국민이?”

한 위원장은 이런 말도 했다.

“그건 그냥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굉장히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뿐이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는 건 평소 이재명 대표다운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쩐다? 사실은 그게 바로 ‘평소 이재명 대표다운 말씀’인 것 같은데?

“법으로 안 되니까 칼로 죽이려 한다”

이 대표는 사건 발생 및 입원 8일 만인 지난 10일 퇴원했다. 그는 입원 중이던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종식해야 한다.” 

그는 “우리 정치가 어느 날인가부터 절망을 잉태하는 죽임의 정치가 되고 말았다”며 “이번 사건이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제대로 된 정치로 복원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흉기로 목숨을 위협 당했던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고 해도 생환의 소회와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 대표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런 비장감에 젖을 법하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다만 코멘트가 너무 정략적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한 위원장이 ‘망상’이라고 했지만 이 경우는 피해의식으로 인한 게 아니라 자존망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악의 집단이 온갖 술책과 수단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정의의 사도쯤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싶은 것 아닌가?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김 모 씨라는 일개인이 저지른 범죄행위였을 뿐이다. 그 이유가 정치적이었다고 해도 개인의 행위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 뒤에 엄청난 배경이 있는 듯이 상황을 비틀어 묘사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살해 기도를 ‘법→펜→칼’로 계통화했다. 동일세력이 수단을 달리해가며 그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렸다는 뜻이겠다. 그러니까 정권과 우파 언론이 차례로 덤볐다가 안 되니까 칼잡이를 동원했다는 내용의 스릴러다. 

“무도한 권력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재하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구상하고 있는가? 당연히 거기엔 무대장치가 필요하다. 아주 거창하게 꾸며야 ‘영웅 탄생’다운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지난 6일 ‘당 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 대표의 당무 복귀 전날 국회 본관 계단에서 ‘당 대표 정치테러 은폐‧축소 수사 규탄대회’라는 것을 열었다. 당 지도부와 현직 의원, 보좌진·당직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 이제 와서 경찰을 의심하다니

이 규탄대회에서 홍익표 원내대표는 “중대 범죄자의 신상, 변명문, 이 사람의 모든 사회적 커리어, 그리고 통화기록, 인터넷 검색기록, 사회적 관계망 등 모든 사실을 한 점 의혹 없이 경찰당국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또 “경찰은 더 이상 은폐, 축소로 제2의 정치 테러를 야기하거나 우리 사회를 음모론과 혼란으로 끌어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후의 사태는(사태에 대한 책임은) 명백하게 정부여당과 경찰 수사당국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경고한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별 일이다. 검찰로부터 수사권(대공수사권까지 포함)을 모두 뺏어서 경찰에 주는 것(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권만은 공수처에 부여)이야말로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과제라며, 꼼수까지 동원해 ‘검수완박(검찰수사완전박탈)’입법을 밀어붙인 민주당 아닌가. 그렇게 믿어마지 않았던 경찰이 이 대표 피습 사건을 은폐‧축소한다고 의심하다니!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 만큼 피습의 정치적 효과를 최대한 도출하고 싶다는 욕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의도가 불순하고 허풍이 너무 심하면 국민들의 걱정은 짜증으로 변하고 만다. 총선을 석 달 앞둔 시점에 제1야당 대표에 대해 테러를 획책할 바보 같은 정권이 정말로 있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5개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당권과 공천권은 악착스레 움켜쥐고 있는 이 대표는, 그냥 놔두는 것이 여당의 승리전략 아닐까? 

2006년 5월 20일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벌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괴한의 커터에 얼굴을 심하게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른 손으로 턱을 감싸 쥐었으나 이 대표처럼 쓰러져 눕지는 않았다. 상처는 귀 아래부터 오른쪽 턱 바로 윗부분까지, 길이가 11cm, 깊이는 최소 1cm에서 최고 3cm에 이르렀다. 치명적 상처였다.

조직의 성패는 리더십에 달려 있다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당시, 현 인천시장)이 다음날 수술에서 깨어난 박 전 대통령에게 비상의원총회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달하자 첫마디가 “오버하지 말라고 하세요”였다(5일, KBS라디오 유 시장은 인터뷰).

자신의 피습을 정치사건으로 몰아가기에 급급한 이 대표와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 아닌가? 또 그 다음날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자 박 전 대통령은 “대전은요?”라고 물었다(위의 인터뷰).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은 이 말 한마디로 고전하던 대전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한나라당은 압승했다. 

(지난 주에도 이 난에 썼지만) 민주당 이 대표(당시 성남시장)는 2015년 6월 트위터(지금의 X) 등에 커터 피습자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시나요? 기회공평한 세상, 꿈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원하시나요? 커터칼..관심 기져주세욤.^^”
“컷터칼도 계속 키우면 청룡언월도 보다 더 크고 날카로워지겠지요. 컷터칼이 언월도 되는 날까지..같이가요.”

이렇게 이죽거렸던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흉기 공격에 대해서는 ‘절망을 잉태하는 죽임의 정치’ 운운하고 나섰다. 

리더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련의 에피소드다. 그 때의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뒀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반사효과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유사한 상황에서 닮은 꼴 흉기 공격을 당했지만 민심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까닭에 대해 이 대표와 민주당은 궁금해 하기나 할까?

조직의 성패는 리더십에 달렸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아주 빈약하고 너무 이기적인데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