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더불어민주당의 치졸한 행태가 어디까지 가고서야 멈출까? 정치를 하자는 건지, 당 대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험구 경연을 하려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명색이 원내 제1정당이다. 그런데 말본새는 저잣거리 시비꾼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질이다. 이런 것도 정당의 정치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정당 자체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새삼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민주당의 언어가 한심하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오후 충남의 서천특화시장 화재현장을 찾았다. 거기서 윤 대통령은 피해상인들을 위로하고 적극적인 복구 지원을 다짐했다. 이어 화재를 진압한 후 뒷마무리를 하고 있던 소방대원들을 격려하고 안전장비 등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다. 

화재현장 방문을 ‘화해쇼’로 폄훼

강추위에 눈까지 흩날리는 날씨였다. 292개 점포 가운데 227개가 타버린 대형 화재였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설 대목을 위해 준비했던 상품들을 화마에 잃고 만 상인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위로 격려한 것은 당연했다. 만약 총리나 관계 장관들을 대신 보냈다면 민주당이 뭐라고 흠을 잡았을지 상상만으로도 귀가 아프다.

대통령은 당초 오후 3시에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한 위원장이 1시부터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자 1시 30분으로 일정을 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시차를 두고 따로 방문할 까닭이 없었다. 같이 가서 피해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피해 상인들의 고충을 청취함으로써 복구를 위한 당정협조 체제가 더 원활히 작동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같이 현장에 갔다는 것을 되레 공격거리로 삼았다.  

“윤석열-한동훈 브로맨스 화해쇼가 급했다지만,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서천 특화시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을 어떻게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느냐”(강선우 민주당 대변인 브리핑, 중앙일보, 23일).  

“화재 현장을 윤석열-한동훈 화해 현장으로 활용하러 간 거냐”(김한규 민주당 의원, 위의 신문).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장면을 두고) 윤 대통령이 공천권을 가졌음을 자인한 꼴이다. 김건희 여사가 모든 사안에 키를 쥐고 있는데, 한 위원장이 자력으로 살아남기 어려우니 고개를 숙인 것이다”(민주당 지도부 관계자, 위의 신문).

심사가 꼬여도 어떻게 이 지경으로 꼬일 수가 있을까. 

민주당 지도부는 왜 서천에 안 갔나

입만 떼면 ‘국민’을 들먹이는 민주당 지도부는 왜 위로 방문을 하지 않았을까? 설 명절을 앞두고 망연자실해 있을 상인들을 찾아가 고충을 듣고 복구에 힘을 보탤 생각을 미처 못 한 건가 아니면 회피한 건가. 화재현장 동시 방문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갈등의 봉합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왜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가. 

한 위원장의 ‘폴더 인사’를 비아냥거렸던데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무례한 폴더 인사 패싱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지난 6일 한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숙 여사에게 90도 인사를 했지만 무시당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자 한 위원장은 다음날 “(김 여사가) 저를 모르셨을 수도 있다. 다음에는 제가 좀 더 잘 인사드리겠다”(중앙일보, 7일)는 말로 눙쳤다. 

김건희 여사가 모든 사안에 키를 쥐고 있으니까 한 위원장이 살아남으려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단정했던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의 코멘트를 듣고 싶어진다. 한 위원장이 김정숙 여사에게 폴더인사를 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고 여기는가.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인사를 받고 손을 잡으며 어깨를 다독이던데 김 여사는 왜 패싱을 했을까? 대통령보다 더 높아서?   

이재명 당 대표도 민주당 식 논평을 거들었다. 그는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동반 화재현장 방문에 대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절규하는 피해 국민 앞에서 일종의 정치 쇼를 한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거울 보며 비난하기에 특화된 언변

정치쇼라는 점에서 이 대표를 따를 사람이 있을까? 이날 회의에서 그는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 국민은, 법 앞에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의 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울 앞의 사자후, 거울 향한 비난에 특화된 언변을 갖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재주다. 물론 부끄러운 줄은 모른다. 보기에 그렇다.
이 당의 홍익표 원내대표도 잊지 않고 추임새를 넣었다.

“상인들이 밤새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기다렸는데 대표 일부만 만나고 상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2층엔 올라가지 않았다. 재난 현장을 자신들의 권력다툼에 의한 화해 현장을 위한 장식품으로 사용한 것 아닌가”(중앙일보, 23일).

이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한 것과 관련해서는 음모론을 잘도 퍼뜨리던 정당의 지도부 인사가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호체계든 시간이든 무시하고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다니. 그렇게 상인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왜 현장에는 가지 않았는지 부터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대형화재 현장을 두고 ‘장식품’ 운운한 ‘비유의 빈곤’도 한심하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능동적으로 형성하거나 수렴해서 여러 기관과 세력들에 유통시키는 일종의 물류센터다. 그 유통로를 혈관이라고 한다면 혈액은 언어다. 정당은 그 혈관을 건강한 혈액으로 채울 할 책임이 있다. 오염된 혈액은 정치의 패혈증을 유발한다. 언어를 타락시키는 정치집단은 정당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국민도 이런 정치집단이나 정치꾼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