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무소속 윤관석 의원(작년 5월 3일 더불어민주당 탈당)이 31일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후보였던 송영길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 소속 국회의원 20명에게 각 300만원씩 든 돈 봉투를 나눠줬다. 경선 캠프 관계자에게 요구해 받은 돈이었다. 같이 기소된 송 전 대표의 측근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칼럼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윤 의원은 그달 30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체포동의안에 대해 ‘부당한 야당탄압이자 정치수사’라면서 ‘강력 대응’의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야당탄압’ 호소인에 징역 2년형

“준 사람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받은 사람에 대한 조사도 없이 영장을 청구한 전무후무한 상황이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서도 망신주기, 강압적 자백 강요 수단으로 체포동의안을 제출했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3선을 거치며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을 해왔다. 당과 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검찰 조사도 받기 전에 스스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힘겹게 검찰과 싸우고 있다.…… 검찰의 부당한 야당 탄압용 기획수사, 총선용 정치 수사에 당당히 맞서 결백과 억울함을 반드시 밝혀내겠다.”

‘양심의 화신’으로서 ‘악마 검찰’에 대항해 정의의 싸움을 끝까지 벌일 것 같았던 그는 9월 18일 첫 공판기일에 ‘돈 봉투’를 시인했다. 다만 봉투 하나에 300만 원씩이 아니라 100만 원씩 모두 2000만 원을 살포했다는 주장이었다(범죄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징벌을 경감시키는 쪽으로 꾀를 냈을 터이다. 그러나 법원은 6000만 원을 받고도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면서도 ‘양심’을 들먹이고, 책무에 충실했던 검찰을 무도한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윤 의원의 경우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민주당 소속(범죄 혐의 때문에 탈당한 경우도 포함)의 피의자나 피고인들은 하나 같이 정권과 검찰의 야당탄압 희생양으로 자처한다. 이들은 예사로 ‘검찰 공화국’ ‘검사 독재’를 입에 올린다. 우리가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범법 사실을 들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검찰 조직 같은 것은 없애버려도 좋다는 사고방식이다. 실제로 온갖 사술(邪術)을 구사하며 검찰무력화를 시도한다.

“나와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자나 집단은 깨부수어야 한다. 그게 정의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안전할 수만 있다면 국가체계 같은 것은 왜곡되거나 와해돼도 상관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사람들, 이런 집단이 ‘민주주의’를 운위하고 있는 모습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의 파괴주의적 레토릭이야 말로 ‘극좌적 언어’다. 그렇지만 이들은 언제나 ‘극우’에 대한 경고와 고발과 비난만 쏟아내고 있다. 극우든 극좌든 파괴주의적 이념‧언어‧행동양식이다. 단언컨대 우리사회에 극우는 없다. 그러나 극좌는 분명히 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넘쳐날 정도다. 

7개 사건에 10개 혐의로 수사‧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검찰 악마화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의관‧국가관이 궁금하다.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기 거의 불가능할 만큼 엄청난 사법 리스크를 지고 있으면서도 당권과 22대 총선 민주당 후보 공천권을 틀어쥐고 있는 그 힘은 괴력이라고 할 만하다. 그 원천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정의의 지연’ 즐겨온 범법 의원들

다시 윤관석 의원의 예로 돌아가자. 그는 작년 8월 구속된 이후 지금까지 의정활동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당(세비)은 꼬박꼬박 받는다. 이제 1심 판결이 났을 뿐이다. 임기 만료 전에 확정판결이 나기는 틀렸다. 설령 3심에서까지 1심판결이 유지된다고 해도 그는 마지막 날까지의 세비를 다 챙기게 된다. 범죄자에 대해 국가가 막대한 수당을 혈세로 지급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9명의 보좌진(유급 인턴 1명 포함)까지 국비로 제공한다. ‘검찰공화국’이기는커녕 ‘범죄장려공화국’으로 불릴 판이다. 

윤 의원뿐만 아니다.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 확정 판결을 받았거나 다른 범죄로 자격을 박탈당한 전직 의원들 모두가 재임기간 동안의 세비를 알뜰하게도 다 챙겼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이미 기소되었고 재임 중에 형의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의원은 3년 5개월을 국회의원 신분으로 권한을 행사하며 거액의 국비를 세비로 받았다. 역시 민주당의 황운하 의원도 출마 전에 기소돼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임기를 다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같은 당 윤미향 의원도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작년 9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역시 임기를 거뜬히 채우게 된다.

시사저널의 보도(1월 29일)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28명의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주당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는 하급심에서 의원직 상실형 선고받은 의원도 22대 총선 공천 적격판정을 했다. 국회의원과 정당의 도덕적 해이, (심하게는) 타락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런데도 세비를 반납 시킬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기대할 바 못된다. 입법권을 국회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재판 기간 세비 전액 반납(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을 공약했지만 법제화되기 이전엔 강제가 불가능하다. ‘권고’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이의 제도화에 나설 의원들이 지금이나 장래에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더니 정의를 지연시키는 사법부와 정의의 지연을 즐기는 입법부가 한 통속이 되어 ‘그들만의 좋은 시절’을 잘 누렸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총선이라는 계기를 맞은 만큼 국회와 정당의 고질적 병폐 및 모순을 과감히 바로 잡겠다는 입법자들의 분명한 의지 표명이 요구된다. 설령 그게 공약(空約)이 되고 말더라도 거대 정당이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울림이 클 수 있다. 그래서 집권당인 국민의힘 한 비대위원장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내려놓기, 세비 반납하기 등의 공약이 소중하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