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중학교 미술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 어느 덧 정년퇴임의 시간이 다가왔다. 문득 아버지의 퇴임 이후가 궁금했던 아들은 질문을 하게 된다.
“아버지,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다 계획이 있지.”

놀랍게도 아버지의 계획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아버지는 오랫동안 꿔온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게 되는데 … 한 점 한 점 그림이 쌓이고, 몽마르트 언덕의 한 명의 화가가 된 아버지.
영화 끝 무렵 잠깐 전시회장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
“나는 또 꿈이 있지!” 

2020년 초에 나온 다큐영화 〈몽마르트 파파〉, 은퇴한 아버지의 꿈 이야기다. 이처럼 요즘 은퇴한 노년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었던 꿈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에 직장 생활하느라 가족 챙기느라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은퇴 후에 하는 것이다.

은퇴 후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저무는 인생에 무슨 꿈같은 소리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 없는 노년은 날개 꺾인 새와 같다. 꿈을 꾸는 데는 나이 제한이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생 아닌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인생의 가을에 꾸는 새로운 꿈은 자신의 삶을 최고로 만들어 줄 것이다.

1860년에 태어난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라는 미국 화가는 76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이 할머니는 자신이 자란 시골의 풍경, 썰매 타는 풍경이나 추수감사절 풍경 등을 그림으로 그려 동네 약국에 걸어 놓았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어느 미술품 수집가의 눈에 띄어 뉴욕 미술계에 소개됨으로써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할머니의 작품은 지긋한 나이와 소박한 인격이 한데 어우러져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었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1,6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삶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하루하루 마모되어 가는 기계나 다름없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애착도 가지 않고 책임감도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많아서다. 인생 2막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된다. 그 일에 자기 후반기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전심전력을 기울여보자. 그러면 자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울 수 있다. 꿈은 꾸는 사람의 것이다.

은퇴 후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다. 어릴 때 백일장 나가서 상 받은 경험도 없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글 쓰는 재주를 드러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노년에 글 쓰는 것을 꿈으로 선택한 이유는 뚜렷하다. 글로서 나를 지혜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하루하루를 삶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고 있다. ‘100만 명에게 영감 주는 좋은 작가’를 꿈꾸며 …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꿈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살자는 사람들도 있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처럼 한바탕 일생을 풍미해 보지만 깨고 보면 꿈이라는 거다. 정말 인생이란 한낱 덧없는 꿈에 불과할까?

만약 세상의 일이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하면 살 이유가 없다. 꿈이 없는 삶은 실존의 상실이다. 허무주의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런데 노년에 꾸는 꿈은 새우 꿈인 경우가 많다. 위축된 마음과 현실의 제약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는 것이 어떨까?

노년의 건강과 활력, 향상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노년의 꿈’이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꿈이 있다면 황혼도 여행이다. 노년이여, 꿈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