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대통령과 TV방송의 100분에 걸친 국정 대담에서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이다. 날이 밝으면 아마도 일제히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설명에 대해 온갖 평가가 쏟아지고 요란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다른 많은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릴 것이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경제 외교 안보 등 국정 현안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게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게 안정되고 선진화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대는 빗나갈 확률이 매우 높다. 선동은 설득보다 힘이 세다. 이 경우라고 예외가 될 리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더불어민주당은 대담이 끝나기 무섭게 대통령을 격하게 공격하는 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을 내놨다. 

비난 욕심이 넘쳐 호들갑 브리핑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진실한 사과를 요구했던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와의 천양지차인 상황 인식과 반성의 기미조차 찾을 수 없는 태도에서 대통령의 오만이 하늘을 찌름을 보여줍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의 이 브리핑은 ‘비난’의 의지가 너무 넘쳐서 호들갑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은 다 할 수 있어도 민주당 사람들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될 말을 수석대변인의 이름으로 토해낸 것이다. 권 대변인은 이에 앞서 이재명 당 대표의 ‘법인카드 진실 토로와 사과’를 먼저 받아 발표했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 윤 대통령을 비난하더라도 하는 게  정치인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도리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시절이던 22년 2월 3일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논란과 관련해 ‘입장문’을 냈다. 권 대변인이 좋아하는 ‘사과’가 아니라 교활한 ‘부인(否認)’의 말이었다.  

“경기도 재직 당시 근무하던 직원의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자기 부인 김혜경 씨의 일이 아니라 ‘직원의 일’인데 자신이 사과한다는 투였다. 

“지사로서 직원의 부당행위는 없는지 꼼꼼히 살피지 못했고, 저의 배우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감지하고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다. 더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자랐다.”

이 대표 부인의 수행비서 노릇을 하면서 온갖 수발을 다 들었던 당시의 경기도 5급 직원 배소현 씨, 그의 지시로 ‘법카 심부름’을 했던 7급 공무원 조명현 씨만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됐다.

세상에! 그 ‘직원들’은 소고기, 초밥, 샌드위치 등을 누구에게 사다 바쳤다는 건가. 이 대표 부부 혹은 부인은 그것들을 누가 가져다 줬는지도 모르고 먹었는가. 도지사쯤 되면 아파트 현관문 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수롭잖은 일로 생각했을까? 도지사이니까 부부가 함께 도민들로부터 봉양(奉養)을 받을 만하다고 여겼을까?

7일 조선일보는 이 대표 부부의 ‘법카 유용’과 관련 새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심부름을 도맡아했던 조 씨가 공개한 내용이다. 그는 직속상관이었던 배 씨의 지시로 이 지사 공관 냉장고에 제철 과일을 거의 매일 채워 넣었다. 또 격주에 한번, 약 30만 원 이상의 과일을 보자기에 싸서 수내동 자택에 보냈다. 경기도청 법인카드가 사용됐다. 

책임 떠넘기기 이력이 난 이재명

“많게는 천만 원 가까이 도청 업무추진비가 이 대표 부부 과일값으로 사용됐다.”

조 씨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법인카드 유용과 관련해서 아는 척 한 것은 ‘입장문’이라는 것을 냈을 때 단 한 번이었다. 음식이나 과일은 모두 자신들의 배에 들어갔을 텐데도 “제 부하 직원의 잘못을 사과합니다”는 식이었다. 

이런 이야기 어떨지 모르겠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다가 방귀를 뀌고 말았다. 당황한 며느리는 “배가 아픈 모양이네요”라며 등에 업은 아이 탓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말했다. “내 배가 아프면 엄마가 방귀를 뀌어?”

누구나 한번쯤은 듣고 웃었음직한 우스개다.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6일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함으로써 당내 친문‧친명 갈등이 다시 첨예화한다던데 이 또한 ‘이재명식 책임 떠넘기기’다.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대선 패배의 책임 가운데 가장 큰 몫은 당시의 이 후보가 지는 게 당연하다. 

“여러분의 패배가 아니다. 모든 책임은 민주당이 아닌 나에게 있다.”

이 대표 자신이 재작년 3월 10일 새벽 여의도 당사를 찾아 한 말이다. 그렇다면 임 위원장이 불출마를 요구한 대상은 이 대표가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였지만 이 대표가 그 선택을 따를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참에 ‘친문’을 싹 정리하고 ‘친명’ 일색으로 당의 회일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명문정당’론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윤 대통령이 부인의 명품가방 문제와 관련, ‘아쉽다’고만 입장을 표명한 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상대가 무슨 못된 짓을 하면서 접근하고 속였든 사려 깊지 못했던 대응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는 게 더 나았다고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는 않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할 경우, 그 후폭풍이 어떨 것인지는 KBS와의 대담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만으로도 짐작이 가고 남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선동의 장에 끌어내기 위해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것이다. ‘이재명의 법카’는 잊은 양 하면서….  

대통령을 선동의 장에 끌어내기

“책임회피를 위한 ‘몰카 공작’, ‘정치 공작’ 주장에 대통령이 동참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민주당 권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공작이 아니면 무엇이었다는 것인가? 유튜브 언론 ‘서울의소리’가 제공한 시계 내장형 카메라를 차고, 김 여사가 중학생 때 작고한 그 부친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접근해서, 역시 서울의소리가 사준 명품가방을 선물했다. 그걸 시계카메라로 몰래 촬영해서 갖고 있다가 1년도 더 지나 총선을 앞두고 터뜨린 것을 공작이 아니라면 뭐라고 해야 하나?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남의 선친을 이용해가면서 궁지로 몰아간 최재영이라는 사람의 행위는 한 마디로 악랄하다. ‘서울의소리’의 의도나 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위에 대통령 부부가 휘둘리게 될 경우를 생각해보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작정하고 덤벼든 교활한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 정말 있어도 된다고, 민주당은 생각하는가? 이렇게 ‘대통령 부인의 가방’에 집착하는 민주당이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의 경우에 대해서는 왜 말을 않는가?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 휘장이 부착된 전용기를 혼자 타고 인도로 갔다.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혼자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엄청나게 많았다는 그의 의상과 장신구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단 한 마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 

윤 대통령 부부가 한남동 관저에 입주하기 전 서초동 사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경호가 느슨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용해, 그 아파트 지하에 있던 김 여사 사무실을 방문해 저지른 짓이다. 최대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이라면 이런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행위에 대해 오히려 엄중 경고하고 나서야 할 텐데 거꾸로 거기에 편승하다니! 

김 여사도 대통령 부인의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한시도 잊지 말았어야 했다. 사기꾼에 당했다고 해도 잘못은 잘못이다. 대통령이 바로 관저에 입주할 상황이 못 되었던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가방을 선물 받은 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판의 생리가 어떤 것인지를 싫도록 깨달았을 텐데도 당선 후 긴장의 끈을 놓은 것 또한 김 여사 자신의 잘못이다. 총선 전에는 어렵겠지만(야당의 의도가 뻔하니까) 적절한 시기를 택해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히는 게 옳다고 본다. 앞에서 예로 든 두 김 여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