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온갖 물의를 빚으며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35일을 버티다가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사퇴했던 조국 씨 이야기다. 그는 지난 12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양산 평산마을에 가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창당을 통해서라도 윤석열 정권 심판과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며 정치참여의 의지를 문 전 대통령에게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당을 창당하는 불가피성을 이해한다.”

문 전 대표는 그렇게 ‘조국 신당’의 창당을 인가했다. 조 씨는 문 전 대통령의 대권도전에 이념‧이론적 멘토 역할을 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최측근 참모로서 특히 검찰 무력화 작업을 도맡았다. ‘수사권 조정’의 기치를 내 걸었으니 나름대로 명분은 갖춘 셈이었다.

조국, 신당 창당‧총선 출마 선언하다

그러나 방법이 독했다. 검찰 내에서 인망이 남다르고 강단이 있는데다 소신이 뚜렷해 보이는 국정농단 특검팀의 윤석열 수석 파견검사(대전고검 검사)를 주목했다. 검찰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검찰 개혁의 과제를 밀어붙일 현장 지휘관으로 제격이라 여겼을 것이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차장급이던 윤 검사를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그리고 2년 만에 검찰총장 자리에 올려놨다. 당시 검찰총장보다 5기수 아래의 윤 검사장을 기용한 것은 충격적 인사이기에 충분했다.

문 전 대통령과 조 전 민정수석은 특검과 검찰을 최대한 가동시켜 직전 박근혜 정권에 ‘적폐’의 멍에를 씌워버렸다.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징벌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검찰권 과시의 마지막 향연 같은 것이 됐다. 문‧조 두 사람의 구상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검찰의 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검찰 무력화야 말로 노 전 대통령을 위한 복수이자 문 정권의 위험요인 제거대책이 될 것이었다.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 정말 그런 의도로 윤 총장을 숨이 턱에 찰 정도의 속도로 승진시켜 그 자리에 앉힌 것이라면 문‧조 두 사람의 시나리오는 악랄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기들 휘하의 고위 공직자를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을 이용하여 또 다른 적을 통제함)의 수단으로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한 후엔 후폭풍이 있게 마련일 터였다.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할 사람도 예비 되어 있었다. 윤 총장 말고 달리 누구일 수 있었겠는가.

윤 총장(지금의 대통령)이 그 의도를 짐작 못했을 리 없다. 문 정권의 요구에 응하면서 검찰의 권한과 위상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두고 고민했을 법하다. 그런데 꾀주머니 조 씨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온갖 비리 의혹을 달고 다닌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법무장관에 임명된 후 정권의 힘을 배경으로 검찰의 칼을 빼앗겠다고 서둘렀다. 이에 대한 검찰의 대응이 ‘조 씨 일가’에 대한 대대적 수사였다.

정권 안의 내전 상황에 대한 문 대통령의 대응은 안일했거나 오만했다. 조 씨에게 장관 자리를 주면 반대 여론의 압박이 심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임명을 고집했다. 이왕 그랬으면 검찰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조정하는 등 압력 완화조치를 취했어야 할 텐데, 대통령은 오히려 검찰 개혁의 고삐를 더 죄었다.

문재인, “신당 창당의 불가피성 인정”

여론에 밀려 조 씨를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한 후의 문 대통령 행보도 엉뚱했다. 민심과 여론을 달래는 쪽으로 유화정책을 펼 일이었는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당 대표)을 후임 장관에 앉혔다. 검찰을 끌어안기는커녕 윤 총장을 밀어내고 검찰의 기강을 다잡으라는 투의 강경책을 구사한 것이다. 당근이 아니라 몽둥이를 휘두르던 추 전 장관은 제풀에 지쳐 주저앉고 말았다. 그 후임 박범계 전 장관도 상황 악화에 일조를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후임자를 역설적 방식으로 키워내고, 그 탓에 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전말이다.

조 씨는 이후 지금까지 검찰과 법원의 신세를 지고 있다. 다른 친인척은 별개로 하더라도 부인과 자녀들이 함께 법망에 걸려들었다. 조 씨 자신은 지난 8일 2심에서 1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같은 법정에서 그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아들 입시비리 문제로 받은 형량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었다. 전번엔 딸 문제로, 이번엔 아들 문제로 범죄자가 된 것이다. 조 씨는 그간 자기 가족의 처지를 ‘멸문지화(滅門之禍)’로 표현했었다. 억울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반성이 없다’는 말로 그를 질타했다.

조 씨는 항소심에서까지 유죄 선고를 받고도 뉘우치는 빛이 없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다가 무수히 찔리고 베였지만 그만두지 않고 검찰 독재의 횡포를 막는 일에 나설 것이다.”

이정도 되면 병증이라고 할 만하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로서 형사법을 가르쳤고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검찰과 협력한 데 이어 잠시나마 법무부 장관으로서 휘하에 검찰을 거느리고 있던 사람이다. 자기 가족들의 파렴치한 행위로 심적 고통을 겪은 국민에게 사과할 생각은 않고 검찰 모욕주기‧복수 다짐하기로 일관하는 모습을 어떻게 정상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여러 차례 뜸을 들이다가 신당창당을 공식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 문 전 대통령 방문은 이들 사회의 출정(出征) 격식인 모양이다. 문 전 대통령은 그의 도덕성 회복을 주문하는 대신 신당 창당을 ‘이해’한다는 말로 부추겼다. ‘반문(反文)’ 분위기에 휩싸인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다는 토로다. 조 씨에게 기대를 걸겠다기보다는 민주당 이 대표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참으로 못 말릴 문‧조 콤비라고 하겠다.

조 씨는 13일 고향 부산에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어 14일 광주 5‧18국립묘지를 참배했다.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려면 이곳에 가서 각오를 다지고 투쟁의지를 밝혀야 한다는 게 좌파 정치인들에게는 불문율이 된지 오래다. 진영 내에서 행세께나 하려면 당연히 거쳐야 할 참배 코스다. 조 씨는 참배를 마치고 말했다.

도덕적 자기 제어력 마비된 사람들

“저는 오늘 예전의 조국으로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습니다.”

민주당이 조국 신당과 선거 연합을 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대해, 이제 와서 회군을 할 수는 없다는 각오를 밝힌 셈이다.

그 말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겠으나 다음의 말은 정말 들어주기 민망하다.

“저와 제 가족, 주변 분들이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뒤늦게 광주시민들께서 40년 넘게 겪은 고통과 분노를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 전에는 ‘광주의 고통과 분노’를 말로만 떠들어 왔다는 고백이다. 자신과 가족의 범죄를 광주 시민의 투쟁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황당한 화법이기도 하다. “나도 광주시민들처럼 분노할 자격을 획득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으로서 조 씨가 보이는 행태는 황당하다.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조롱하는 것 같은 그의 오만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문 전 대통령의 지독한 이념정치‧진영정치‧팬덤정치가 정치인의 인간성에서 도덕적‧사법적 자기 제어력을 마비시켜버린 때문일까? 자신의 사법리스크 를 해소하기 위해 개딸과 그 주변세력, 그리고 당내의 친명계를 동원해 반(反)검찰 바리케이드를 쳐온 민주당 이 대표의 후안무치 리더십에서 배운 것일까?

조 씨를 비롯 ‘검찰독재’ ‘정치보복’ ‘야당탄압’을 떠드는 문 정권 및 민주당 주변 범법 인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공개적으로 떠들어 말할 자유는 이미 박탈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여 정부를 비난하고 검찰을 모욕주고 있다. 어디에 ‘독재’가 있다는 건가?

여기는 검찰청 앞에서 가장 모욕적인 용어를 총동원해 검찰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사는 나라다. 범죄자가 기소된 이후에도 버젓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국회의원 배지를 단 후에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급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대법원이 의원임기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는(적어도 과거에는) 범법 정치인들의 천국이 바로 여기다.

정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으로 범죄자의 이력이 세탁되고 명예가 회복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망상이다. 수치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사회 발전에 진심을 다해 기여하는 삶을 살 때 도덕적 사면이 이뤄지고 명예는 회복된다. 조 씨 등 괴상하게 교만한 인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