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시끄럽다. 22대 총선 후보자 공천과정이 이재명 당 대표의 사천(私薦)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다. 공정성이 확립되지 않은 공천은 유권자 기만이고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반역이라 할 수밖에 없다.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을 비롯, 공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이 국민을 속이면 국민은 외면으로 갚는다.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정치인의 처지가 어떤 것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권노갑 상임고문·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강창일 전 주일대사 등 민주당의 원로들이 22일 공천의 불공정성을 질타하는 ‘입장문’을 냈다.

“지금 벌어지는 민주당 공천 행태가 민주적 절차와는 동떨어지고 당대표의 사적 목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어지는 민주당 원로들 쓴 소리

그러니까 당 대표가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이들은 촉구했다. 그 전날인 21일에는 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 명의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의 공천은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들 또한 “이 대표가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초 두 전직 총리는 민주당 출신 전 국회의장들과 한 목소리를 내려 했다가 논의 후 각자 따로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체재 중인 정 전 총리는 김 전 총리와 뜻을 같이한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한다. 

지난 15일에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이 대표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그 전날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적은 것과 관련 “이 대표가 후보 시절에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재명의 민주당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큰 코 다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입장이 전체 당원의 뜻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문재인 인맥의 저항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치 경력이나 민주당과의 연고성을 따진다면 이 대표가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할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툭하면 사퇴하라 소리 하는 분들이 계신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365일 대표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22일 당 대표실 앞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그런 말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공천 불공정 시비’인데 그는 사퇴요구에 대한 불쾌감부터 표한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싫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었다. ‘밀실 공천’ ‘사천’ 논란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라서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골라내고 있는 중”이라며 심사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앞장서서 도왔지만 지금은 후회”

그는 전날의 의원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 의원들의 관심이 공천에 쏠려 있고, 관련 발언들이 쏟아질 게 분명했는데도, 설명‧설득‧답변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대표가 빠져 버린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당신들끼리 하라”는 뜻의 불참이었을 수 있다. “이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됐으니 이재명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는 ‘배짱’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이 대표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어서 국민 모두가 알고, 이 대표 자신도 알고 남을 일이다. 그렇지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니까 경시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뭐냐 하면 ‘문전성시(門前成市) 문전작라(門前雀羅)’의 고사다. 힘이 있는 동안엔 문 앞이 시장거리를 이룰 만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힘이 빠지면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쳐놔도 될 정도로 인적이 끊어진다. 

민주당 이수진(서울 동작을) 의원이 22일 탈당을 선언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컷오프를 발표하자 바로 탈당으로 대응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저는 위기 때마다 이재명 대표를 앞장서서 지지하고 도왔고, 오늘의 당 대표를 만드는데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회한다. 책임을 통감한다. 제가 왜 후회하는지 그 이유는 머지않아 곧 밝혀질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부분들이 밝혀져 있고, 그로 인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희망을 잃어 버렸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 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컷오프 발표 전까지 그는 아주 충직한 이 대표 지킴이였다. 그 자신이 밝힌 바로는 그렇다. 판사 출신인 그는 이 대표가 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백현동 재판의 결과가 너무 (확연하게) 보였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2선으로 물러나라는 ‘충언’까지 했는데 안 듣더란다. 

이제 와서 후회하며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었다. 애초에, 아니면 중간에라도 자신이 아는 진실에 자신의 언행을 맞췄어야 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한 충성의 길만 걸었다. 그러다가 공천에서 탈락하자 비로소 자신이 아는 진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충성심이 아마 이 수준일 것이다. 

사심을 못 버리면 총선에서 필패

그렇다고 겁낼 이 대표가 아니다. 그의 계산법은 아주 다르다. 떨어져 나가는 사람만큼 찰싹 달라붙는 사람이 생긴다. 총선이 끝나면 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더 강해질 것이다. 충성심이 검증된 사람으로 채울 테니까. 아주 틀린 계산이라 할 수는 없지만 조건이 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이재명의 민주당’은 건재할 수가 없다. 그 자신의 지위가 가장 먼저 흔들릴 것이다.

총선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사심을 다 버려야 한다. 오직 공공선에 헌신하는 자세를 당 구성원들과 유권자들에게 확인시킬 때다. 문제는 이 대표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데 있다. 어쩌면 ‘이재명의 이익이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라는 가당찮은 등식을 마음속에 세워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충언을 귀 밖으로 듣고 마는 게 아니겠는가.   

이 의원 한 사람만의 경우라면 지나쳐 버려도 되겠지만 이런 행태는 전염성이 강하다. 이번 공천 과정을 통해 이 대표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개연성이 높다. ①친명 위주 공천은 당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고, 그만큼 총선 승리는 멀어진다. ②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 이 대표는 자신의 충성집단 안에서조차 손절 당할 가능성이 있다. ③총선에 이긴다고 해도 그의 사람관리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것이다. ④22대 국회 민주당 의원들이 그의 사법리스크를 해소 또는 완화시켜 주리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치환경, 국민의 요구, 국회의원들의 인식이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재명의 위기’다. 그가 이를 깨달아 적절히 대응한다면 위기는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그 때문에 위기 상황은 악화일로다. 당을 떠난 사람들은 오히려 파괴력이 약하다. 안에서 불만과 불신의 소리가 확산되고 부풀어 오르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게 머지않아 보인다. 그걸 ‘골수에 든 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