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중앙books 제공
사진=중앙books 제공

오늘날 한국 스포츠의 위상은 눈부시다. 2002년 월드컵 4강, 10년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메이저리그 최초 아시아인 내야수 골든글러브 수상, 800만 관중 돌파한 프로야구, 미국여자프로골프 톱 50랭킹에 13명이나 포진한 한국여자골프 등등.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성취는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손흥민, 류현진, 박인비 등에 앞서 시련을 견뎌낸 선배 스포츠인들이 한국 스포츠 발전의 토양을 마련한 덕분이다. 

스포츠 기자로 24년 동안 현장을 누빈 정영재(현 중앙SUNDAY 문화스포츠에디터)가 펴낸 '죽은 철인의 사회'(중앙BOOKS)는 스포츠계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죽은 철인의 사회’는 중앙일보 주말판 신문 중앙SUNDAY의 인기 연재 시리즈를 단행본을 출간한 책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한 제목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기획 시리즈이다.

이 책에는 코피 터져도 던진 ‘무쇠팔’ 최동원, 조선의 첫 홈런타자 이영민, 전국체전에서 수영복이 없어 사각팬티를 입고 출전해 2관왕에 오른 조오련, 일흔에도 축구 묘기 선보인 한국 축구 아버지 김용식, 감나무 채로 210미터 날린 LPGA 한국인 첫 우승 구옥희, '작대기 도박'을 스포츠로 승화시킨 '당구의 전설' 이상천 등등 한국 스포츠 역사를 이룬 '전설의 스포츠'인 26명의 숨은 얘기가 담겨 있다.

저자 정영재는 이들을 철인이라 지칭한다. ‘철인’은 아이언 맨(鐵人·Iron Man)과 와이즈 맨(哲人·Wise Man)이라는 의미를 중첩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하면서도 지혜롭게 살다 간 스포츠인들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표현이다.

저자 정영재는 ‘언젠가 스포츠계의 오비추어리(Obituary·부음 기사) 영역을 개척해 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결과 탄생한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를 통해 독자들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스포츠 영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그들이 생전 가장 가까이했던 이들과의 소중한 일화를 엿볼 수 있다.

정영재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성한 대한민국 스포츠. 지금의 이 화려한 성취는 걸출한 한두 명의 스타가 만들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유상철과 박지성이 있었기에 손흥민이 나올 수 있었고, 그 앞에는 차범근이, 그보다 더 앞에는 한국 축구의 아버지 김용식과 홍덕영, 최정민이 있었다. 최동원이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일찍이 온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박찬호도 류현진도, 지금의 KBO 리그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태환과 황선우의 앞에서 먼저 물살을 가른 이는 조오련이었고, 박세리와 박인비에게 골프라는 문을 열어준 것은 구옥희였다"고 말한다. 

이렇듯 지금의 스타들 앞에는 먼저 간 전설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국 스포츠의 역사다. 큰 줄기의 역사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면 지금껏 듣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도 적지 않다.

아버지의 의족을 가슴에 품은 최동원의 사랑, 고교 시절 유도부 15명을 물리치기 위해 독사 대가리를 깨문 조오련의 깡, 프로레슬링 전설 김일이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건넨 이야기, 친구 박종팔이 들려주는 김득구의 섬뜩한 각오, 산이 된 남편 박영석을 기억하는 아내의 눈물, 제자 이강인에게 완치하여 꼭 감독이 되어주리라 약속했던 유상철의 말까지…. 

단순히 스포츠인들의 기록과 약력을 설명하는 글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에는 전설적 인물들의 생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그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보의 모음집이 아니다. ‘부음 기사’ 영역 개척이라는 의지를 가진 한 명의 기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여러 사람들을 만나 직접 듣고 목격한 현장의 목소리이자 미처 우리에게까지 닿지 못했던 잊힌 고백이다.

저자가 ‘철인’이라 이름 붙인 26명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 수 없던 이야기를, 먼저 걸어간 이들의 내밀한 속마음을, 철인들 곁에서 함께 호흡하고 여전히 그들을 잊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정영재 중앙SUNDAY 스포츠에디터. 사진=본인 제공
정영재 중앙SUNDAY 스포츠에디터. 사진=본인 제공

지은이 정영재는...
대한민국 최강 스포츠 스토리메이커. 스포츠 기자로 월드컵·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 대회를 현장에서 취재하며 숱한 특종과 감동 스토리를 발굴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고,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부산 해운대고, 연세대 국문학과와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체대에서 박사학위(스포츠산업경영)를 받고 경희대·한양대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스포츠 멘탈코치 자격증도 있다. 현재는 중앙SUNDAY 문화스포츠에디터로서 스포츠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 성직자 등 다양한 영역의 셀럽을 만나 풍성한 스토리를 엮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