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2023년 마지막 날에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에 한반도의 야경 이미지를 공유했다. 머스크는 ‘낮과 밤의 차이’라는 제목과 함께 ‘미친 발상(Crazy Idea) : 한 나라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반씩 나누고 70년 후에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보자’는 글을 달았다.

번영하는 남한과 피폐한 북한의 모습이 극렬하게 대비되는 이 이미지는 한 나라가 어떤 가치체계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나라뿐 아니라 개인도 그러하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챗GPT를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오픈AI사(社)가 지난해 11월 17일 갑자기 샘 올트만 CEO를 해고했다. 그런데 올트만은 5일만에 복귀했다. 기업가치 860억 달러(111조 5천억원)를 가진 회사의 가치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의 결과였다.

  오픈AI는 2015년 비영리 재단으로 출발했다. 설립 초에 AI 관련 투자를 모두 기부금 형태로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을 모으는데 어려움이 닥치자 오픈AI 글로벌이라는 영리목적의 자회사를 두고 마이크로소프트(MS)를 필두로 한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일정 부분 이상의 수익이 나면 초과분을 모기업에 넘기도록 했고 최대 주주인 MS는 이사회 멤버로 들어오지도 못했다. 오픈AI의 설립 취지, “주요 수혜자는 투자자가 아니라 인류”, “이익 극대화보다 공공의 이익이 우선” 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샘 올트만 CEO의 해임은 이런 숭고한 사명을 저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최대주주 MS의 생각은 달랐고 90% 이상의 직원들이 MS에 동조했다. 이들은 인재가 없으면 안전연구(Alignment, AI를 인간 의도에 맞춰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치의 대충돌이었다. 천재 개발자, 과학자, 기업인, 학자, 시민단체 등이 모두 이 논쟁에 합류했다. 기업의 가치체계가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됐다.

  알파고로 유명한 딥마인드의 출범도 오픈AI와 유사했다. 딥마인드의 창업자들은 2014년 자금의 문제로 회사를 구글에 매각하면서 “군사목적 사용불가, 윤리위원회 개최” 등의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윤리위원회는 구글이 인수한 이후 딱 한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그러자 AI의 독주를 경계하며 제프리 힌턴 박사는 구글에 사표를 던졌다. 그의 제자로 구글에 있다 오픈AI에 합류한 일리야 슈츠케버도 이번 오픈AI 이사회의 올트만 축출에 동의했다. 부머(Bommer)와 두머(Doomer)로 불린 두 진영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고 기술의 진보와 사회적 이슈를 연계시키며 기업 내 가치 논쟁, 나아가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가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기업의 화두로 떠올랐던 ESG도 가치의 논쟁에 휘말렸다.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은 독일계 기후행동주의 펀드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석유 판매가 목적인 엑슨모빌은 소비자의 탄소 배출까지 통제해야 하는 “스코프3”을 도입하는 것이 회사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ESG 활동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선제적으로 ESG란 투자원칙을 내세웠던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더 이상 ESG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라고 했다. 투자운용사, 연기금 등의 비상한 관심 속에 벌어지는 가치의 논쟁이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산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경제 단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2019년 8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용으로 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애플의 팀 쿡, GM의 메리 배라 등 최고경영자 181명이 서명했다. 일각에서는 주주 자본주의의 종언이라고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 선언이 쇼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181개의 서명 기업 중 단 한 곳에서만 이 선언이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는 하버드대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러나 BRT는 여전히 강경하다. 이들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결과로 차별과 기후변화, 공정한 노동 등에 관해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미래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치열한 기업 내 가치 논쟁을 예고한다.

  포스코와 KT&G의 CEO선임을 둘러싼 잡음을 보면 우리 기업은 가치의 논쟁에서 철저히 소외된 느낌이다.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 대통령이 특정 기업에 “부도덕하다”라고 호통을 치고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이 무슨 혁신을 했느냐”라고 조롱을 해도 할 말이 없다.

가치보다 자리, 비전보다 사람,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을 맞춘 한국 기업들은 먼 훗날 인류와 인간의 행복에서 어떻게 기억될까? 가치의 논쟁을 외면한 대가는 머스크의 한반도의 야경에 비친 어느 한 쪽의 모습으로 우리 기업의 미래에 나타날 수 있다. 한국식 경영방식에 더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