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겨울 바다에서 파도는 웃음이다. 먼바다에서 뭍으로까지 달려왔다는 완주(完走)의 안도감 때문일까, 파도의 포말은 웃음을 터트리는 행위고 표현 방식이다. 미소가 아니라 폭소라며, 거친 삶에서 길러진 바다의 영혼이 비로소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이다. 힘겹게 살아온 삶일수록 사라질 때는 웃음이어야 한다는 파도의 철학이 춤을 춘다. 웃음으로 춤을 춘다. 그런 파도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정동진 앞바다의 해안선. 

 그 파도를 지켜보며 사람들도 웃는다. 그 웃음을 보려고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에도 번지는 웃음이여, 웃음이여. 하얀 치아를 드러낸 사람들의 얼굴이 안개꽃 같다. 파도를 맞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흩어져, 흩어져, 파도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독차지하며 해맑게 웃는 허공.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탓일까, 바람도 멈춰 서서 웃음들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도의 일부는 바다와 맞닿은 나지막한 산으로도 달려갔다. 그동안 해안경비를 위한 경계근무로 피로해질 대로 피로해진 철조망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힘겹게 올라간 파도들, 그리고 갈매기가 물고 있다가 떨어뜨리고 간 난바다의 소식들이 봄이 되면 여기에도 싹을 틔우리라. 생명체들을 웃게 하리라. 그렇게 태어난 꽃이든 풀이든 나무든 작은 짐승이든 겨울 파도가 남긴 웃음을 기억하리라.    

 걷다 보니 몽돌해변이다. 이 겨울 파도의 웃음을 돌로 간직했기 때문일까. 여기에 모여 사는 돌들은 한결같이 둥글다. 몽돌이란 모가 나지 않고 둥글다는 뜻이니, 저 돌들을 모아 작품을 만든다면 미소 가득한 인물화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인물화에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러 오는 미세한 바닷바람. 불현듯, 아득한 옛날을 그리워하는 해안단구에서 내 전생도 웃고 살았던 삶이었는지 묻고 싶어진다.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소환되어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한 ‘투구바위’와 ‘육발호랑이’가 안내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등대. 이 등대도 밤마다 겨울 파도의 웃음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따스한 불빛으로 화답했으리라. 바다를 내려다보니 역시 파도의 웃음은 호탕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저 웃음을 배워가면 된다. 정신없이 아등바등 달려온, 숨 가뿐 질주로 살아온 사람들이여. 웃음으로 긴 여로를 푸는 파도의 삶을 배워라. 배워라. 

 23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살필 수 있는 이곳에서,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듯한 이곳에서, ‘나’라는 파도도 웃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니, 벌써 심곡항이다. 산책을 마친 사람들이 풀어놓은 웃음이 파도처럼 젖어 가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그리고 그런 파도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정동진 앞바다의 해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