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전공의들의 집단파업이 18일째를 맞고 있는 지금까지도,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의사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겠는가? 의사의 신세를 져야 할 날이 점점 많아질 일개 시민이니까 더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의사 선생님들, 질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생사를 의사들에게 맡겨야 하는 일반 국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시는가?

밥그릇 줄어들까봐 아우성인가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은 국가 의료‧교육‧사회정책을 맡은 정부의 몫이다. 의사들이 나서서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대면서 정부와 맞장 뜨겠다고 할 일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그냥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환자를 내팽개치고 집단파업을 하는가?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가 의사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부터 하시라.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수요도 늘어나게 마련이어서 건강보험 등 의료관련 재정 체계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있다. 의사 수를 늘려봐야 의사(및 환자)의 수도권 집중과 인기 진료 분야 편중 현상을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그만큼 의료교육 부실화의 위험성이 증대한다는 목소리는 더 크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들의 염려다. 그런데 왜 그게 전공의의 파업 사유가 되나? 그거야 말로 정부와 대학 당국이 책임져야 할 일 아닌가? 그런 경우가 걱정스러워 우려를 표하고 항의를 한다 해도 그건 의료 수용자, 수혜자인 국민이 할 일이다. 의사들은 그럴수록 그 좋은 머리와 뛰어난 실력으로 국민의 건강, 나아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는 단 하나인 것 같다. 의대 정원 대폭 증원이 의사 각자의 파이를 줄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지 않나? 지식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수준에서도 최상위를 자랑하는 의사들이 수입 줄어들까봐 자해 공갈단 비슷한 압박수단을 정부를 상대로 구사하다니!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연봉을 받거나 수입을 올린다는 의사들이 밥그릇 줄어들까봐 지레 아우성치는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딱하지 않은가?

지금 대입 수험생과 그 부모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학과가 의학과라고 한다. 그 입장이 되면 진입로를 넓혀주는 게 좋겠는가, 지금처럼 꽉 조인 채 두는 게 좋겠는가? 자신은 이미 의사가 됐으니 진입을 제한해서 면허가 주는 이익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심보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기염을 토한 분이 있던데, 정부와 의사집단을 교전상대로 여겨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라 안에 의사집단이라는 또 다른 정부가 있다는 뜻인가.

집단사직 제재하면 전체주의?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전현직 간부 5명을 전공의 집단사직 교사혐의로 고발한데 따라 6일부터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됐다. 첫 번째로 경찰에 출석한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전 의협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MZ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신인류인데 선배들이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한다고 따를 애들도 아니다. 우리가 후배를 교사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또 개인자격으로 사직한 것인데 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말이겠다.

그는 지난달 10일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비수도권 지역 인재 중심의 의대 증원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대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개악이다. 환자들의 수도권 이동을 가속할 것이다.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란 거다.”

지방 사람들은 민도, 그러니까 수준이 낮아서 수도권 병원으로만 몰리는데 왜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느냐는 뜻이다.

29일 의협회관 정례브리핑에서는 ‘전체주의’까지 들먹이며 정부를 비난했다.

“정부의 모습이 처벌을 통한 겁박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박민수 차관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면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교사와 방조가 법원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인식으로는 위에 인용한 그의 발언이 교사이거나 방조로 들린다. 정부를 향해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한다고 공격하는 것 이상으로 집단사직 전공의들을 부추기는 말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같은 말투로 묻겠다. 의사들의 집단파업은 국민 겁박이 아니고 뭔가?

이들 뿐만 아니다. 의대 교수라는 사람들이 ‘제자 보호’ 운운하면서 사직서를 내거나 삭발을 하고 나서는 모습이 가관이다. 대학병원 겸직해제로 정부를 압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의대에 들어가서 6년 과정을 마치고 의사시험에 합격한 후 수련의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집단사직을 응원하는 행태를 보이다니!

인류 봉사에 일생 바치겠다더니

교수들은 이 사태로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보호’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악화될 경우 면허정지, 어쩌면 면허취소까지도 감당해야 할 처지에 있다. 형사 책임을 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을 두고 집단파업을 벌이는 의사들을 역성들 국민은 많지 않다. 다만 의료계의 기득권자들만이 제자‧후배들을 두둔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으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환자 진료가 바로 의사의 본분이다.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는 이미 의사가 아니다.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병원 밖에서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의사’라는 호칭은 과분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환자를 외면해도 괜찮다는 생각인가? 국가가 면허제도로 이들의 업권과 이익에다 사회적 위상까지 지켜줄 가치가 있는가?

의대생·의사가 활동하는 비공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직을 않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거나 병원에 복귀하고 싶어 하는 전공의들을 향한 욕설과 협박이 난무한다는 언론보도다. 교수를 ‘X수(욕설과 교수의 합성어)’로 부를 만큼 이들의 인격은 막장에 이르렀다.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면서 의사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금전적 이익과 영역 지키기에 면허증까지 걸다니! 다른 나라의 의사들도 흰 가운 속에 이런 욕심을 가득히 채우고 사는지 궁금하다.

이번에 다시 물러서면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패를 고칠 기회를 영영 잃고 만다. 정부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믿고 지지하는 국민에게 엄청난 배신감‧실망감을 안길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정부의 권한과 책무를 파업 전공의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아니라면 엄정 대응의 방침을 고수해야 마땅하다.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