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회식에서 정부 공작보고(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리 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와 같은 '5% 안팎'으로 제시했다[AP=연합뉴스]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회식에서 정부 공작보고(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리 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와 같은 '5% 안팎'으로 제시했다[AP=연합뉴스]

"시 주석의 '황제 위상'만 재확인한 맹탕 행사,' "신선함과는 아예 담을 쌓은 정책 재탕," "당면 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행사," "경제는 뒷전인 채 국방에만 주력하는 모양새."

11일 폐막한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다. 

일당독재 체제 유지 위해 2인자 총리 권한마저 '찬탈'... '당정분리' 공식 종식 예고 

이번 양회는 시급한 경제위기 극복은 뒷전인 채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황제' 지위를 공고화하려는 성격이 특징이다.

전국을 온통 '투기왕국'으로 변모시킬 정도로 과열상을 보였던 부동산 경기 급락, '위드코로나'(코로나19 일상회복)에도 회복되지 않은 소비, '업적 부풀리기'에 몰입하면서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 직전인 지방자치단체들, 악화일로를 걷는 미국과의 관계 등 내우외환 상황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와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장서 차를 마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연합뉴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장서 차를 마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연합뉴스]

한 마디로 일인독재 체제 강화를 통한 권력집중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경제 등 내치를 사실상 담당했던 2위자 총리의 명목상 권한마저 '찬탈'딩했다.

올해 양회의 '험로'를 예고한 것은 리창 국무원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 폐지 뉴스였다. 개막 바로 전날 대변인을 통해  "올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소한 몇 년 간은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총리는 개막일에는 정부공작보고(정부업무보고)를 하고, 폐막일에는 대미를 장식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해왔다. 특히 1993년부터 정례화된 기자회견은 국정을 사실상 책임지는 총리가 직접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자리로 그동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리창 중국 총리가 5일 전인대 제14기 2차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리창 중국 총리가 5일 전인대 제14기 2차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총리의 이런 조치는 중국 개방과 개혁을 통한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인 덩샤오핑의 구상으로 그동안 진행되어온 '제한적 범위의 당정분리'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덩의 구상대로 총리는 경제   분야를 책임지면서 당 총서기·국가주석·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는 최고지도자와 호흡을 맞춰왔다. 이에 따라 외부에서는  '장쩌민(국가주석)-주룽지(총리)', '후진타오(국가주석)-원자바오(총리)' 등으로 최고지도자와 총리를 짝지어 중국 체제를 지칭하는 관행도 생겼다.

그러나 올해 양회에서 리창 총리는 '시의 복심' 답게 전인대 개막일 정부업무보고 외에는 거의 한 차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서 총리 위상의 급락을 그대로 보여줬다.

리창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 있고 집중된 통일 영도를 견지하면서,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관철하는 집행자·행동파·충실한 행동가(實幹家)가 되겠다"는 이례적인 말까지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옆자리의 리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전인대는 11일 폐막했다[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옆자리의 리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전인대는 11일 폐막했다[AP=연합뉴스]

이에 따라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임기 제한이 철폐되고, 당내 집단지도체제나 당정 분리 관행이 하나씩 깨지면서 '당의 핵심'인 시 주석으로의 권력 수렴은 더 명백해졌다는 게 일반의 분석이다.

이날 전인대 전체회의가 마지막 일정으로 40여년 만에 통과시킬 것이 유력시되는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은 이런 '당정 분리의 종언'을 법적으로 명문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 "성장률 목표 5% 안팎" 작년과 동일… 목표 달성에는 회의적 전망 우세

리창 총리는 5일 개회식에서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장을 견인할 부양책을 제시하지 않고 기존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머물다 보니 안팎에서 목표 달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은 '일자리 1200만개 창출'과 '사회주의 현대화 완성'으로 대변된다. 일자리 창출은 중국경제의 '뇌관'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고급인력'이 1179만명으로 새로 노동시장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흡수하려면 5%가 필요하다. 1%포인트 성장 때마다 20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게 정설이다.

 충칭 취업 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충칭 취업 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은 또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선 매년 이만큼의 성장이 필요하다. 그러 중국이 올해 목표를 달성하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게 해외 전문가들의 일반적 전망이다. 코로나19 기저효과와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의 탓이라는 제 정설이다. 

지난해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전해(2022년) 성장률이 3%로 바닥을 친 덕분에 연초 제시한 5.2% 성장을 이뤄냈다. 또 신규 주택 판매 회복 부진과 이에 따른 헝다, 비구이위안 등 '대장업체'들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침체도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청산명령 받은 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청산명령 받은 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또 신용 중심, 국가 주도 투자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내놓은 것은 과거 경기 진작책 반복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정부가 제시한 ▲ 신품질생산력(新質生産力) 발전 가속화 ▲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 기반 강화 ▲ 내수 확대 등 올해 10대 임무에서도 신선함을 찾기 힘들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국방예산은 7.2% 증액...대만해협·남중국해 갈등 속 해군 증강

경제가 '죽을 쑤는' 상황에서도 국방예산만은 전년대비 7.2%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올해 국방예산은  1조6700억위안(309조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7.2%와 같은 것으로 2021년 6.8%, 2022년 7.1% 증가율보다 다소 높은 것이다. '5% 안팎'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서도 3년 연속 국방 예산 증가율이 7%대를 넘어선 셈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서남쪽 태평양에서 이·착륙 훈련하는 중국 랴오닝함의 모습[일본 통합막료감부 제공/연합뉴스]
일본 오키나와현 서남쪽 태평양에서 이·착륙 훈련하는 중국 랴오닝함의 모습[일본 통합막료감부 제공/연합뉴스]

이처럼 국방비를 증액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해군력 증강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대양해군 건설 등 국방 현대화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대만해협은 물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미국과 마주한 서태평양에도 해·공군력을 투사하려 한다는 목표다.

시 주석도 이에 가세했다. 그는 전인대 인민해방군·무장경찰 대표단 전체회의에 참석해 특히 해군력 강화와 관련, "해양에서의 군사적 충돌 대비와 해양 권익 보호, 해양 경제 발전을 위한 준비를 조율하고 해양 관리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그은 중국의 '구단선'[중국 바이두/뉴시스 캡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그은 중국의 '구단선'[중국 바이두/뉴시스 캡처]

전인대 대표인 위안화즈 중국 해군 정치위원은 이번 양회 기간 취재진에 중국이 4번째 항공모함을 건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외교 분야에서는 지난해와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미중관계 안정화와 가득화 전략 기조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랑(늑대전사) 외교'를 계속 추진하는 것보다는 수위 조절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강온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왕이 외교부장 겸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잘못된 대중국 인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미국이 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각을 세운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원색적인 대미 비판 자세에서 탈피해 균형감을 유지하겠다는 점도 시사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중국 외교부 제공]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중국 외교부 제공]

또 중국이 신흥국과 개도국에서 '맏형' 역할을 하겠다는 '글로벌 사우스' 를 포괄한 다극화 전략기조도 재확인했다. 경제지원 등을 통해 우군을 적극 발굴해 영향력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한중관계에 대해서도 기존의 '북한 편들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 등 주변국 외교의 우선순위가 하락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