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 이 말은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인디언들이 좋은 날씨를 활용하여 겨울철 식량을 더 많이 비축할 수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기간의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를 가리키며, 주로 첫서리가 내린 다음에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이런 기후현상을 ‘물총새의 날’ 또는 ‘노부인의 여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디언들이 신의 선물로 감사히 여기는 늦가을 초입의 사냥하기 좋은 따듯한 날씨처럼, 인생에서도 늦은 시기에 새로운 상승국면을 맞게 되는 때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텐리 홀은 노년기에 선행하는 이 시기를 ‘인디언 서머’라고 하면서,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이런 깨우침대로 살아가는 행동력을 겸비한 시기라고 했다. 인구학자이면서 역사학자인 피터 래슬릿은 이 새로운 생애단계를 ‘제3기 인생’이라고 부르면서, 높은 생산성과 꾸준한 학습이 가능한 시기이자 미래 세대에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는 시기라고 했다.

물론 개인의 직업이나 활동영역에 따라 현역과 은퇴로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생애주기라는 것이 사회구조가 투사된 것이지 꼭 그렇게 구분해야 할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정년과 은퇴기를 경험한다. 스텐리 홀이나 피터 래슬릿은 모두 이 시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결코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뒤로 물러나서 쉬는 단순한 은퇴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실 ‘제3기 인생’이라 불리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생애단계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고, 정년과 연금이 사회제도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새로 생겨난 것이다. 수명이 짧았던 예전에는 농사를 짓거나 노동현장에서 작업화를 신은 채 바로 죽었기 때문에 ‘제3기 인생’으로 별도로 구분할 기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년 등으로 생의 주된 직업에서 물러난 이후 무려 30~40년이나 되는 기나긴 은퇴기가 생겼고,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개인적으로나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년과 노년 사이의 중간 단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로부터 물러나 여유롭게 지내는 시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생산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시기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나 공통된 인식은 없다. 장수시대에 노년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어느 쪽이 더 현명할까?

이 시대의 많은 풋내기 노년들은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한다. 개발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일이 몸에 배어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다보니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후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경우에도 놀기보다는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는 들었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사회구조와 인습이 강제로 일에서 은퇴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은퇴시키고 연금 주는 것이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하는 고령사회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형편이 된다면 여유로운 은퇴기를 보낼 수도 있다. 일에서 손을 떼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제3기 인생을 생산적으로 활동할 것인지, 단순한 은퇴기로 보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생각이나 처지가 다를 수 있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 인생에 있어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은퇴 후 아무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몇 년이다. 온전한 휴식과 진정한 자유가 길어지면 거짓말처럼 또 다른 허전함이 찾아온다. 그러니 은퇴 후 얼마간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좋다.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인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