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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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30만명에 달하는 서민·소상공인 대상 대출 연체이력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이 본격 시행된다. 코로나19와 고금리 장기화 등의 어려움으로 제때 빚을 갚지 못해 신용도가 떨어진 취약계층을 제도권 금융 안으로 안착시키기 것으로 실제 신용점수 상승에 따른 카드발급, 신규대출 등이 가능해진다. 이에 일각에선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는 긍정적이나 카드사 등 2금융권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개인 264만명 신용평점 37점↑…15만명 신용카드 발급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지원 시행‘ 행사를 열고 이날부터 개인 최대 298만명, 개인사업자 최대 31만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 지원조치가 시행되고 대상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이용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서 2024년 업무보고에서 코로나19 여파에 고금리·고물가가 겹친 비정상적 경제상황에서 서민·소상공인이 불가피하게 채무변제를 연체한 경우 정상적인 경제생활에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신용회복 지원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15일 전 금융권은 서민·소상공인의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2000만원 이하 소액연체자가 연체금액을 전액상환한 경우 연체이력 정보의 공유‧활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연체 이력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신용회복 지원조치는 2021년 9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소액 연체가 발생했으나 오는 5월 31일까지 연체금액을 전액 상환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대상기간 중 소액연체가 발생한 자는 개인 약 298만명(나이스 평가정보 기준), 개인사업자 약 31만(한국평가데이터 기준)이며 지난달 말 기준 연체금액을 전액상환한 자는 개인 약 264만명, 개인사업자 약 17만5000명이다.

서민·소상공인 등은 개별 개인신용평가회사와 개인사업자신용평가회사 홈페이지에서 신용회복 지원 대상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대상자에 해당하는 경우 별도 신청 없이 신용평점이 자동으로 상승하게 된다.

연체금액을 전액상환한 개인 약 264만명, 개인사업자 약 17만5000명의 경우 별도 신청 없이 오늘부터 즉시 신용회복 지원이 이뤄진다. 나머지 개인 약 34만명, 개인사업자 약 13만5000명도 오는 5월 31일까지 연체금액을 전액상환하면 별도 신청 없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나이스 평가정보는 올해 2월 말 기준 전액상환을 완료한 개인 264만명의 신용평점이 659점에서 696점으로 평균 37점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특히 신용회복지원 대상의 신용평점이 20대 이하의 경우 47점, 30대의 경우 39점이 상승해 이번 조치가 사회초년생이나 청년의 재기 지원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신용회복 지원에 따라 약 15만명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며, 약 26만명이 은행권 신규대출 평균평점을 상회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국평가데이터는 전액상환을 완료한 개인사업자 약 17만5000명의 신용평점이 623점에서 725점으로 약 102점 상승한다고 밝혔다. 주로 골목상권에서 많은 혜택을 받는 것으로 분석했고 신용회복 지원에 따라 약 7만9000명의 개인사업자가 제1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해진다고 봤다.

한국신용정보원은 오늘부터 채무조정을 이용하는 차주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채무조정 정보의 등록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이에 신용회복위원회나 새출발기금 채무조정을 이용 중인 차주 중 변제계획에 따라 1년간 성실상환한 약 5만명에 대한 채무조정 정보가 조기 해제돼 불이익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 지원 시행 행사에 참석했다. / 사진출처=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 지원 시행 행사에 참석했다. / 사진출처=금융위원회

■ 신용질서 혼란↑…카드사 “건전성 우려” vs “여파 미미”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오늘부터 신용회복 지원조치가 시행되면서 많은 서민·소상공인들이 신규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금융위는 앞으로도 국민들이 보다 체감할 수 있는 민생금융, 상생금융 정책을 지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사회초년생 등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금융권 안팎에선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반복되는 신용사면으로 성실차주와의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고 연체에 대한 잘못된 학습효과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가장 크다.

신용질서 체계를 흔들고 카드사‧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잠재 부실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카드업계는 안 그래도 카드론을 중심으로 한 연체율 급등에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상환 능력이 취약한 저신용 고객의 추가 유입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보수적 영업 등 건전성 관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연체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취약차주들이 몰리는 건 부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신용회복 지원에 따라 신규로 카드를 발급 받는 대상자 수가 15만명에 불과해 건전성 관리에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체 신용사면 대상 약 300만명 중 신용카드 발급 대상자가 15만명 정도로 8개 전체 카드사가 분할 흡수한다면 미미한 수치”라며 “또한 신용카드 발급은 가능하더라도 이용 한도가 크게 부여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관리 가능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신용사면이 시행됐을 때도 여파가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