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지수 ELS 피해자모임은 지난 1월 1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은행권의 ELS 불완전판매를 규탄하는 2차 집회를 열었다. / 사진=김은주 기자
홍콩 지수 ELS 피해자모임은 지난 1월 1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은행권의 ELS 불완전판매를 규탄하는 2차 집회를 열었다. / 사진=김은주 기자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배상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은행들은 선뜻 자율배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배임 문제가 걸려있어 법률적 검토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양대 금융당국 수장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일축하며 서둘러 배상에 나설 것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개인 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홍콩H지수 ELS 상품 분쟁조정 기준안은 사법 절차로 가지 않아도 그에 준하는 사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며 “배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이 분쟁조정안 따라 자율배상에 나설 경우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이 원장은 “다양한 시나리오 안에서 분석해봤지만 자기자본비율(BIS) 등 건전성에 문제 없다는 결론”이라며 “예컨대 1조원 이상 비용 부담이 필요하다면 0.2%포인트(p)가량의 BIS 비율 하락을 초래하는 수준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는 은행권이 배임을 이유로 자율배상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반박에 나선 것이다. 앞서 홍콩H지수 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기본배상비율은 20~40%로 설정하고 판매사와 투자자별 과실 사유와 기타 조정요인 등에 따라 가감 비율이 적용되는 식인데 가입자에 따라 최소 0%에서 최대 100%까지 배상비율이 나올 수 있다.

금감원은 분쟁조정안 발표와 함께 판매사들이 신속히 자율배상에 나설 것을 기대했지만 은행들의 입장은 다르다. 은행들은 향후 주주들이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사안인 만큼 일단 배상비율 적정성을 살펴보고 법률 검토까지 마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미루고 있는 상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권 배임 우려를 일축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금감원에서 합리적인 기준을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건데 왜 배임 문제가 나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시간의 문제일뿐 판매사들이 결국 자율배상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당국과 각을 세우는 상황이 연출되는 건 금융사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자율배상 여부에 따라 향후 제재나 과징금을 감경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은행 한 관계자는 “내부 검토와 이사회의 승인 거쳐야 사안으로 아직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결국 가이드라인은 수용하지 않겠느냐. 다만 은행별로 합당한 수준의 자체 배상안을 만들기가 까다로운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다음달 중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표사례 분조위는 통상 약 2~3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금감원은 이번 조정기준안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조정 절차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사례 이외의 분쟁민원 건은 분조위 결과에 따라 자율조정 등의 방식으로 처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