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비틀어 상처를 입히고 마침내 무너뜨리고 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유의 과잉, 권리의 과잉이 빚어내는 민주정치의 자해현상에 대다수 국민은 속수무책이다. 일부의 국민은 스스로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활동가로 자처하면서 민주정치를 훼손‧파괴하는 행위에 에너지를 채워주고 있다. 제 새끼를 살해한 뻐꾸기 새끼를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워내는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의 처지인데 그런 자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 타락시키는 무조건적 지지

뻐꾸기는 제 집을 짓지 않고 뱁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탁란(托卵)이라고 한다. 뱁새는 제 알과 함께 뻐꾸기 알을 부화시켜낸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린다.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뱁새는 뻐꾸기 새끼를 키워내기에 여념이 없다. 뻐꾸기 새끼가 제 몸보다 열배도 더 크게 자랐어도 열심히 먹이를 잡아다 먹인다. 열성지지자들은 그렇게 특정인을 정치적으로 키워내고 훗날 그의 조종을 받는 열혈 박수부대, 돌격대로 동원된다. 

이런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정치인(혹은 정상배)은 무오류의 스타로 떠받들려진다. 상징적인 표현이 있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는 문재인 팬덤의 구호다. 2018년 1월 24일 그의 생일축하 광고로 지하철 역의 벽을 장식했던 광고의 문구다. 

“문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모두가 옳다, 옳지 않은 일이라도 좋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응원이다. 일찍이 이런 무조건적인 지지는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성 팬덤 ‘노빠’의 버전 2.0, ‘문빠 버전’이었다. 이들의 행태는 이재명 대에 이르러 더욱 격렬해졌다. 좌파 버전 3.0, ‘개딸’들은 더할 수 없는 극렬세력이 됐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 이 대표의 수호자,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비판자들에게 말로 글로 물어뜯을 듯 대들었다.
이런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지지자들이 정치인의 소중한 자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지지세력, 극단적 비호세력은 정치인의 자기 성찰 기회를 박탈하는 역작용도 한다. 이들에 둘러싸인 정치인은 자기 무오류의 착각에 빠진다. 희생과 봉사의 삶은 팽개치고 제왕적 군림의식에 자신을 맡겨 버린다. 

더불어민주당 이 대표가 보여주는 행태가 그렇다. 4건의 전과를 가진 사람이다. ‘총 7개 사건에서 10개 혐의’(조선일보, 1. 31)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당당하다. 낯빛 하나 변하는 법 없이 남의 과오나 범법행위를 규탄 성토한다. 정말 별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의 왕국에서는 그럴수록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

피고인들의 신당 창당과 총선 출마

우리의 오랜 정치의식, 정치도의를 구조적으로 바꿔버린 ‘이재명 현상’이다. 과거 양김 또는 3김의 ‘보스정당’ 체제에서도 ‘주군’들은 국민의 도덕적 평가에 민감했다. 특히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아들들이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 이 대표는 자신의 ‘구속사유가 되는’ 혐의에도 건재하다. 장기간 단식을 하고, 의원들에게 방탄투표를 호소하는 등의 불편(?)을 겪기는 했지만 어쨌든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의 총괄지휘자로 위력을 과시했다. 

‘문빠’든 ‘개딸’이든 그들도 국민의 일부다. 선거는 주인인 국민의 심판과 선택의 절차다. 그 바탕 위에 대의민주정치는 성립하고 성숙해 간다. 그런데 극렬 지지자들은 스스로 주인의 지위를 팽개치고 열렬 추종자로 전락한다. 비판의식을 잃지 않으면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한다면야 뭐라고 하겠는가. ‘노빠’ 이래 좌파 정치인의 팬덤은 ‘묻지마 지지세력’이 됐다. 민주정치의 둥지에서 민주적 가치를 밀어내고 들어앉아 주인행세를 하는 허위와 무례의 뻐꾸기를 지성껏 키워내는 보모가 된 것이다. 

이 대표의 경우만이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감찰무마와 입학업무 방해 혐의로 2심까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지식인으로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워하기는커녕 정당을 만들고 22대 총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는 4년 징역형의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작년 9월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딸 조민 씨는 고려대학교와 부산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 입학이 취소됐다. 조 씨는 부산대 의전원 입시 비리와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구형을 받은 상태다. 

조 전 장관은 화려한 언변, 조만대장경으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SNS글, 조스트라다무스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의 방대한 예언적 자아비판(?) 등으로, 이전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인간형을 스스로 그려 보였다. 자신의 비리나 불법에 대해서 전혀 반성하는 빛이 없으면서도 남들에 대해서는 모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상식인 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엿보여준 사람답게 거리낌 없이 비례정당인 ‘조국혁신당’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권자들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야

그의 정당엔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조국’당에 입당함으로써 비례대표 의원이 될 기회를 얻었다. 조 전 장관이나 황 의원은, 차기 국회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국회의원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조국’당이 비례정당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민주연합에 근접하거나 뛰어넘은 예까지 있다니까 이들은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도덕성 실종의 정치행태는 민주당에서 비롯됐다. 기소된 피의자를 당 후보로 공천, 국회의원직을 차지하고 누리게 한 것이 바로 민주당적 윤리의식이다. 윤미향 의원은 2심까지, 황운하 의원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임기를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최강욱 전 의원은 중간에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을 받았으나 3년 3개월 반 동안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을 공천해서 의원으로 만들어준 그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혐의만으로는) 비리백화점인 이 대표다. 

민주당의 윤리의식 상실을 상징하는 인물로 정봉주 총선 후보가 급부상했다. 그는 2017년 유튜브 방송에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스키장 활용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DMZ(비무장지대)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 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막말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이 대표는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났다는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감싸고 나섰다. 자신의 ‘형수 막말’도 세월에 씻겨 가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 씨는 유권자를 ‘벌레’로 표현하기도 했다. 국민을 자기들 기준으로 인식하면 그렇다는 뜻이겠다. 이런 부류의 정치꾼들이 발호(跋扈: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하게 되면 우리사회는 구조적 변화를 강요당한다. 착한 뱁새의 둥지가 교활한 뻐꾸기 새끼들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22대 총선은 국민이 스스로의 지위와 책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유권자 모두 주인의식으로 무장할 것이 요구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대의민주제의 틀을 지켜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