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결국 죽는 것은 의사들이 아니다. 의사들은 이 땅에서든 타국에서든 살길을 찾아갈 것이다. 죽어가는 것은 국민들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애통해하는 마음만 버린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20일 SNS에 올린 글 한 대목이다. 

진료를 않겠다면 면허 반납해야  

“정부는 의사를 이기지 못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국민의 죽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저항하며 벌이는 동업자들의 집단 파업 행위로 국민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죽어 가리라는 것을 잘 안다는 뜻이다.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면서 병원을 떠난다거나 그런 행위를 집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는 게 놀랍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말을 그렇게 당당히 하다니!  

죽어가는 사람에게 삶을 되찾아 주는 게 의사의 본분이다. 그래서 국가가 ‘면허’로 이들의 특별한 신분과 사회적 위상, 그리고 보수를 허용하거나 보장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거나 외면한다면 그 면허는 회수돼야 옳다. 의사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의사 면허가 왜 필요하겠는가. 

“의료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의사들뿐이라는 것과 전문가들이 말을 해도 대중이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고도 썼던데, 견강부회로도 지나치다. 증원되는 2000명은 기존의 정원에 속하는 3,058명에 비해 자질과 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인 듯하다. 물론 억지다.

의대 측이 늘어나는 학생들을 감당할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교육이 부실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의료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다는 극단적 표현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건가? 의사 수가 14만 명이라는데 가르칠 사람이 부족할 리가 있을까. 시설에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책임은 정부와 학교 당국이 질 일이지 의사들이 파업의 핑계로 삼을 일은 아니다.

“의사들은 이 땅에서든 타국에서든 살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말은 또 뭔가. 국민을 향해 “우리는 계속 잘 살겠지만 당신들은 죽어”라고 협박하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 그러니까 ‘대중’은 의사들의 경고를 믿고 정부에 저항하라는 말로 들린다. 정부에 대해서는 “국민이 죽어 나가는 꼴 보기 싫거든 의료의 심장에 박은 말뚝을 뽑아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사람 살리는 것을 본분으로 하는 의사가 ‘죽음의 공포’를 위협 혹은 흥정의 수단으로 삼는 태도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의대 교수직부터 내놓는 게 순서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같은 날 2차 소환조사를 위해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 청사로 들어가며 취재진에게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을 예고했다. 

“제가 우리 의사들의 의지를 모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에 앞장서려 한다.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해 나갈 것이다.”

장래의 의사 수를 정부가 결정하는 게 자유민주주의 파괴라는 건가? 그 문제를 의사들과 논의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뜻인가? 의사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이해당사자들이다. 자기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일개 시민의 눈에는 ‘밥그릇 지키기’ 투쟁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의료 살리기’가 명분으로는 그럴듯하나 의사집단의 의대생 증원 저지 투쟁 속내는 자신들도 알고 국민도 안다. 그런데도 집단 파업에 더해 ‘정치권과 연대한 정권 퇴진 운동’까지 들먹이다니!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5일부터 대학별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한 가운데, 22일 비대위 총회를 연다고 예고했다. 병원별 사직서 제출 시기를 점검 공유하는 마지막 온라인 총회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행정 처분 사전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이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 25일이다. 제출하지 않으면 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태가 내달로 이어지면 의대생들의 유급을 막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날을 사직서 제출 시점으로 잡은 모양이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은 대학병원 임상의사직을 내놓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의대 교수직과 의사 면허까지 포기할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래의 의사를 키워내는 의학 교육자가 제자들을 위합네 하면서 환자 내팽개치기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위급‧중증 환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마주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사직을 하겠다면 의사 면허부터 반납하는 게 옳은 순서다. 의사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의사 면허가 소용될 까닭이 없다. 그 다음 순서로 교수직도 포기해야 한다. 환자 진료는 거부하면서 교수직 의사지위는 누리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 아닌가. 

악순환 협상엔 끌려들지 말아야

내년부터 증원되는 의대 입학생들이 의사로서 활동하게 되는 시기는 빨라야 10년 후이다.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의료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당장이 아니라 그 때의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것인데, 지금의 의사들이 사생결단하듯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너무 경우가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10년 이후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지금의 환자들에게 고통과 공포를 강요하는 양상으로 벌어져도 된다고 여기는가?

지금도 의사가 부족하고 지역별, 진료 분야별 불균형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현상유지를 고집하면 훗날 의사 부족 현상의 심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너무 모자라면 외국 의대 출신 의사들의 국내 진입 문을 활짝 열어야 할 수도 있다. 그때도 정권 퇴진 투쟁을 벌이면서 막고 나서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의사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의료시장’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시장에서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여겨 한사코 의대생 증원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 ‘의료시장’이라는 관점에서도 지금과 같은 투쟁은 현명치 못하다.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면 발전이 없다. 갈수록 의료시장은 확대된다. 서비스 종류와 범위도 늘어날 것이다. 해외에도 넓은 시장이 있다. 도전과 개척을 회피하면 우리 의료의 선진화는 기대할 바 못된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방송에 출연,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먼저 전공의에 대한 조치를 풀고, 먼저 끌어안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해야 한다”며 그럴 때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철회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입장 피력이었다. 그런데 이건 대안일 수가 없다. 과거와 같은 패턴의 해결방식을 요구한 것일 뿐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의사 측 승리였다. 악순환 구조에 정부를 초대하는 격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