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 2호기[방위사업청 제공. 연합뉴스]
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 2호기[방위사업청 제공. 연합뉴스]

"8년 더 늦춰 내겠다."

한국의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의 '막가파식'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1조원이 넘는 개발분담금을 연체한 상황에서 다시 2034년까지 납부기한을 연장해줄 것을 한국에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2026년까지 개발분담금 20% 납부해야...지난해말, 방사청에 납부기한 연장 요구

2016년 체결한 계약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비의 20%인 1조6000억원을 2026년까지 납부하기로 했다. 정작 계약 이후 인도네시아는 상식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일관했다. 

계약 첫 해에만 500억원을 정상납부했을 뿐 이후에는 미납을 거듭했다. "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예산 부족, "한국의 소극적인 기술이전 태도," "기대 이하의 성능" 등 터무니 없는 트집을 내세워 납부를 사실상 미뤄왔다. 온갖 '진상짓'을 하면서 낸 누적납부액은 2783억원에 불과하다. 

[그래픽]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 일지[연합뉴스]
[그래픽]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 일지[연합뉴스]

반면 미국으로부터는 F-15EX 전투기 24대와 S-70M 블랙호크 헬기 24대를, 프랑스로부터는 라팔 전투기 42대를 각각 도입하기로 하는 등 '갈짓자' 행태를 보여 신뢰를 저버린 행태를 보였다. "돈이 없다"는 이유를 무색하게 만든 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지난해 12월 이 사업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에 개발분담금 납부기한 연장 요구와 함께 2034년까지 연도별 납부계획을 담은 제안서를 제출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개발분담금 잔액 규모는 1조3217억원.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요구대로라면 2034년까지 매년 1100억원을 균등납부하는 셈이다.

韓 "현실성이 떨어져 수용할 수 없는 요청"... "인니, 韓 간보기 위한 제안"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이런 요구에 방사청 등 한국측의 반응은 부정적인 것으로 감지된다. 

"미국이 KF-21 사업에 인도네시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행동에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조나 자카르타 기사[Zona Jakarta 캡처]
"미국이 KF-21 사업에 인도네시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행동에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조나 자카르타 기사[Zona Jakarta 캡처]

무엇보다 KF-21 체계 개발사업이 2026년에 마무리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방사청과 공군은 2028년까지 보라매 40대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6월까지 KF-21 20대 생산계약을 우선 체결하고, 내년 1월까지 추가로 20대를 계약하기로 했다. 이에 2032년에는 120대까지 실전 배치해 노후화된 F-4와 F-5를 대체해 명실상부한 공군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일정을 감안하면 개발사업이 끝나는 다음 개발비를 낸다는 인도네시아의 요구는 '턱도 없다'는 얘기다. 

한국형 전투기 KF-21[KAI 제공]
한국형 전투기 KF-21[KAI 제공]

최근 드러난 산업스파이 행태도 부정적인 기류를 부채질했다. KF-21기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한 자국 기술진을 통해 개발 과정 등 다수의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유출하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아직 수사 중인 상태인 데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진은 상당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의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까지 나서 인도네시아에 더는 끌려다니지 말고 아예 손절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실정이다.

14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한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후보가 보고르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AF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한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후보가 보고르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AFP=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기류에도 우리 정부는 계약 파기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기류가 우세하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인도네시아가 재정난을 호소해오면서 연도별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해 분담금 완납 의지를 처음 밝힌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또 지난달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도 "KF-21 같은 당면 사안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인도네시아 잠수함 KRI 나가파스-403[유튜브 캡처]
인도네시아 잠수함 KRI 나가파스-403[유튜브 캡처]

여기에다 이스람권 최대 인구 보유국으로 한국 방산수출 초기에 '마중물' 노릇을 한 점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인도네시아가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도출하기 위해 던져보는 조치"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납부기한까지 낸 만큼 기술이전을 해주는 방안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뢰도 차원에서 이미 추락할 만큼 추락한 인도네시아의 요구에 한국이 '중대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오히려 더 현실성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