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청사[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세계무역기구(WTO) 청사[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이 중국 기업을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문제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서 미중 간 통상 분쟁이 격화할 전망이다.

연합뉴스는 26일(현지시간) WTO 발표를 인용, 중국 대표부가 IRA로 빚어지는 차별적인 보조금 집행을 시정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WTO에서 분쟁 해결 절차가 이날 개시됐다고 전했다.

중국 대표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미명 하에 IRA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사용하거나 특정 지역에서 수입해야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차별적 속성을 띤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IRA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 관련 사업에 3750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인데, 중국에 의존하는 청정에너지 산업 공급망을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취지도 있다.

  중국 전기차 1위 업체인 비야디(BYD)가 CATL에 이어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8일 보도했다[로이터 제공]
  중국 전기차 1위 업체인 비야디(BYD)가 CATL에 이어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8일 보도했다[로이터 제공]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과 부품을 중국을 포함한 외국 '우려 기업'에서 조달하지 않은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전기차를 북미에서 조립해야 한다는 요건을 달아 차별 논란이 불거졌는데 유럽연합(EU)도 IRA에 근거한 전기차 보조금을 미국과의 주요 통상 쟁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기류다.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USTR)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이 IRA와 관련해 협의하자는 중국의 요청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서 "우리는 협의 요청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이 미국무역대표[UPI=연합뉴스 자료 사진]
타이 미국무역대표[UPI=연합뉴스 자료 사진]

WTO 회원국들은 다른 회원국의 정책이 자국을 차별하는 등 WTO 협정을 위반한다고 여길 경우 WTO에 제소할 수 있다.

제소의 첫 단계는 상대국에 분쟁 해결을 위한 양자 협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요청을 받은 국가는 30일 이내에 제소국과 협의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타이 대표가 밝힌 입장대로라면 미중이 협의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타이 대표는 "IRA는 미국이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미국의 경제적 경쟁력에 투자하기 위한 획기적인 도구"라면서 "IRA는 우리가 동맹과 파트너들과 함께 달성하고자 하는 청정에너지 미래에 대한 미국의 기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사이 중국은 중국과 세계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중국 제조업체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불공정한 비(非)시장 정책과 관행을 계속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했다. 사진=블룸버그
  바이든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했다. 사진=블룸버그

타이 대표는 미국이 IRA를 통해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와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기술에 계속 크게 투자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한 비(非)시장 정책과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 협의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제소국은 WTO에 분쟁해결 패널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며 이때부터 WTO의 '재판'이 시작된다.

그러나 중국이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패널 결정에 상소하면 분쟁해결이 마냥 지연될 가능성이 커 실효성이 없는 상징적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WTO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며 자국 입장 관철을 압박하는 차원에서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저지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금도 상소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