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1일 효성물산 신임 사장단 취임식. / 사진제공=효성
1981년 8월 1일 효성물산 신임 사장단 취임식. / 사진제공=효성

29일 향년 89세로 타계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장남으로 48세 때인 1982년부터 2대 회장 자리에 올라 2017까지 35년간 그룹을 진두지휘했다.

조 명예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한국경제 발전 역사를 견인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1935년 11월 19일 경남 함안에서 조홍제 회장과 하정옥 여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석래 회장은 경기고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히비야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 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공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1966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효성물산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조석래 회장은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효성그룹의 전신) 대표이사 사장을 필두로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그룹의 주력계열사들을 맡아 왔다.  선친인 만우(晩愚)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82년에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2017년부터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 ‘기술 경영’ 선구자…다수 ‘세계 1등 제품’ 키워내

그는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그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해 기술경영을 실천했다.

그 중에서도 효성의 스판덱스는 조 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친 결과 효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독자기술 개발로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 세계 최고 품질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구축으로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타이어코드, 비유럽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유럽시장 진출에 성공한 송배전설비, 금융자동화기기, 시트벨트‧에어백 원사 등 다양한 제품들로 세계시장을 선도해왔다.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 / 사진제공=효성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 / 사진제공=효성

나아가 새로운 첨단산업 육성 및 제품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환경 친화적이면서 고강력 섬유소재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꿈의 미래소재’인 ‘폴리케톤’, 강철보다 10배나 강력하면서 무게는 4분 1에 불과해 산업파급효과가 큰 ‘탄소섬유’ 등은 조석래 회장의 창조적 마인드와 추진력과 신기술에 대한 집념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초 신소재 ‘폴리케톤’의 개발 상용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소재강국으로 도약하는데도 기여했다. 이처럼 첨단산업과 혁신제품 개발은 기술 경영의 성공모델로 부상하면서 기업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조석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었다. 효성은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일 만큼 수출지향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세계에 걸쳐 50여개 제조 및 판매법인과 30여개의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 ‘민간 외교관’으로도 활약…“국내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조석래 명예회장은 그룹경영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조석래 회장은 유창한 어학 실력과 풍부한 글로벌 인적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인들과 활발한 협력활동을 전개했다.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한미FTA’의 경우 2000년부터 조석래 회장이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그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였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 바 있다. 그리고 2008년 ‘한미 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주도해 양국 간 교류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일본과도 한일FTA의 필요성을 제기해 추진한 바 있고, 한일경제인회의, 한일산업기술협력페어, 한일고교학생캠프 등을 통해 한일간 무역역조 해소, 한일 기업간 공동비즈니스 추진, 한일 국민간 우호친선활동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 취임. / 사진제공=효성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 취임. / 사진제공=효성

조석래 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경제계 국제교류 활성화 등에 이바지 해 왔다. 조석래 회장이 수장을 맡을 당시 전경련은 재계의 구심점이라는 역할이 퇴색돼가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 회장은 재계의 넓은 인맥과 특유의 리더십으로 전경련을 ‘일하는 조직’, ‘솔선수범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고, 정부에 다양한 정책 제안을 함으로써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 발전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전경련 회장 이전에는 전경련 부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도 역임한 바 있다.

이러한 활동들로 ‘재계의 대표적인 민간외교관’으로 불리기도 하는 조석래 회장은 민간외교활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9년 일본 욱일대수장, 1980년 덴마크 Dannerbrog 훈장을 수훈받았다.

2000년 미국 일리노이공대(IIT) 국제지도자상, 1994년 한국경영자대상, 1987년 금탑산업훈장, 1982년 체육훈장 등을 받았으며, 2013년 미국 일리노이공대 명예공학박사, 2005년 일본 와세다대학 명예공학박사를 수여받아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의 위상을 정립했다는 것이 효성 측의 설명이다. 2022년에는 민간외교관으로서 공헌을 인정받아 한미FTA발효 10주년 공로패, 서울국제포럼 선정 영산외교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와세다대학과 일리노이공대의 한국 동문회 회장직을 오랫동안 맡아 왔고, 동양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양미래대, 동양고등학교 등을 통해 미래 우수인재 육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