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홍보실 제공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홍보실 제공

조석래 회장님!

연초에 새배를 드리겠다 했더니 조금 있다 오시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신가 걱정이 됐지만 설마 이렇게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회장님은 제가 첫 직장인 전경련에 갓 입사했을 때 처음 뵀습니다. 당시 서울의 봄을 지나며 나라가 극도로 어지러웠을 때 덴마크에서 왕세자를 단장으로 많은 기업인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이들을 맞아 한·덴마크 경협위원장이셨던 회장님은 한국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이며 곧 다시 일어설거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외국 기업인들의 가슴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믿음을 심어주시는 회장님을 뵈면서 저런 기업인을 가진 우리 나라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전경련 국제경제실장이었을 때 회장님께서는 한미재계회의 의장으로서 한미비자면제협정을 추진하셨습니다. 그때는 미국비자를 받기 위해 우리 국민들이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텐트를 치며 노숙까지 하던 때였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기업인들이야 미국 비자를 받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지만 국민들의 어려움은 재계가 덜어줘야 한다며 이 일에 매달리셨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공을 들이시더니 기어이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회장님께서는 재계가 국민과 나라를 위해 모처럼 큰 일을 했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좌로부터)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두들이 재계 중진 친선골프에 참가한 생전 모습.  사진=한경협
(좌로부터)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두들이 재계 중진 친선골프에 참가한 생전 모습.  사진=한경협

어느 해인가는 젊은이들이 직장을 못구해 어렵다고 했더니 그자리에서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두배로 늘리라는 지시를 하시는 걸 보면서 이런 경제인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곧 극복되고 미래는 탄탄해질거라는 믿음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조석래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늘 나라를 먼저 생각하신 참 경제인이셨습니다. 회장님이 계셔서 효성이 발전했고, 재계가 성장했고, 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회장님께 진 빚은 조현준 회장을 비롯한 우리 경제계가 합심하여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품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전) 효성그룹 고문 권오용 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