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또 한 번 연 3.5%로 묶었다. 지난해 2월 이후 10차례 연속 동결 결정이다. 금리를 내리기엔 여전히 목표치인 2% 웃도는 높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 주요국 통화정책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양상, 가계부채 증가 추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산적한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대내외 정책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

한은은 앞으로도 물가가 목표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진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창용 한은 총재는 농산물 가격과 유가 등을 변수로 꼽으며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에도 살짝 브레이크를 걸었다.

■ 여전히 불안한 물가에…한은, 기준금리 ‘10연속 동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2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금리 동결 결정 역시 금통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기준금리는 지난 1월 연 3.25%에서 연 3.50%로 0.25%포인트(p) 인상된 이후 10회 연속 제자리걸음이다.

한은은 작년 2월 금통위에서 지난 2022년 4월부터 7회 연속 이어오던 기준금리를 인상 행진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바 있다. 이후 4·5·7·8·10·11월에 이어 올해 1·2·4월 금통위에서도 동결을 택하며 관망세를 지속 중이다.

한은이 10회 연속 동결을 택한 건 물가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2.8%를 기록하며 6개월 만에 2%대로 내려갔으나 2월 3.1%로 반등한 뒤 2개월째 3%대를 이어갔다. 사과‧배 등 과일값이 급등세를 지속하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3%대로 높은 수준인 데다 주요국 통화정책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여전해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 및 국제유가 움직임, 농산물가격 추이 등과 관련한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앞으로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통위는 또한 “물가가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과 성장 측면의 리스크,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 통화정책 운용의 차별화 및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창용 “금리인하 깜빡이 켤까 말까 고민 단계”…하반기 인하 불투명?

이에 앞으로도 당분간 금리 동결 기조는 지속될 전망이다. 시장에선 이르면 3분기부터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나 한은은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속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말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 2.3%로 내려가는 경로가 불안해지면 하반기 금리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저를 포함한 금통위원 전원이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근원물가는 예상대로 내려오고 있지만 농산물과 유가 영향으로 소비자물가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한 “한은이 금리인하 깜빡이를 켰다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은 깜빡이를 켠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깜빡이를 켰다는 건 차선을 바꾸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뜻인데 현재는 깜빡이를 켤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데이터를 더 살펴보고 깜빡이를 켤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최근 사과 등 농산물 가격 상승 등에 대해선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러면서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인지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구조적인 변화에서 우리 국민의 합의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한편 4월 금통위 이후에도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한은이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다만 금리 인하가 시작되는 시점은 다소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4월 금통위는 여전히 물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물가 둔화 기조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면 좀더 확신을 가지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시사한 회의였다”다고 분석했다.

안 연구원은 이어 “이창용 총재 또한 현재와 같이 물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으나 반대로 예상대로 물가 둔화 흐름을 확인한다면 하반기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며 “대외 정책 불확실성에 따라 첫 금리 인하 시점은 8월로 미뤄질 수는 있겠으나 연내 인하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전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 금통위 이후 당사는 연내 한은이 빠르면 7월, 횟수는 3회가량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인하 시점을 8월로 이연하고 횟수도 총 2회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한은은 하반기 인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이를 굳이 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신 인하를 정확히 언제, 얼마나 한다고 언급하기에는 유가 등 대외 불확실성이 기존 한은의 예상보다 크기 때문에 할 말이 없을 뿐”이라며 “명확한 것은 현재로서는 컨트롤이 불가한 대외적인 물가 상방 리스크가 좀 더 큰 것이 사실이므로 그 현상에 대해 판단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