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였다. 최근 메이플스토리에 불거진 확률 조작 논란과 관련해 이용자(유저)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 넥슨이 '강화·합성 확률' 공개 카드를 꺼내들며 사건 수습에 나섰지만, 유저들의 불만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9일 게임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넥슨이 확률 공개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유저가 우려한 대로 확률 조작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실망감과 함께 미흡한 보상체계로 민심 달래기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메이플스토리 유저는 "몇 년간 유저들이 얘기할 땐 듣지도 않더니 게임이 망해가니까 쇼하는 것 같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다른 유저는 "유저는 사람으로 안보는 것 같다"며 "(확률 공개가) 게임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시위하는 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는 "넥슨 게임들은 도박성 요소로 수백, 수천 현질을 유도하는 선 넘은 자본의 괴물들밖에 안 남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게임 업계에서는 '넥슨 사태'가 게임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지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회가 게임법 개정안 추진을 강력하게 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자칫 업계의 목소리가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터질게 터졌다. 단순히 낮은 확률도 문제지만, 제대로 내용을 고지하지 않는 점은 큰 문제"라며 "아울러 이번 일로 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자율규제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무작위' 모호함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확률 조작 의혹 불거져

18년의 역사를 지닌 장수 게임 메이플스토리가 위기를 맞은 까닭은 무엇일까. 발단은 지난달 18일 메이플스토리 테스트 서버의 업데이트 공지 한 줄로부터 시작됐다. 넥슨은 '아이템에 부여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추가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이템의 추가 능력치를 부여하는 '환생의 불꽃'은 메이플스토리의 대표적인 유료형 아이템 중 하나다. 막대한 양의 게임머니로 구입하거나 과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환생의 불꽃 아이템 툴팁에는 '무작위'라는 용어가 명기돼 있다. 이에 유저들은 능력치가 뽑힐 확률이 각각 동일하다고 믿고 해당 아이템을 사용해왔다. 무작위의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통계에서 동등한 확률을 발생하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저의 주장대로라면 추가 능력치가 힘, 민첩, 지능, 운 등 4가지 항목만 있다고 가정할 경우, 확률은 각각 4분의 1로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5일 공개된 확률표에 따르면 실제 능력치 별 가중치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넥슨은 이에 대해 "유저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무작위', '랜덤' 등의 용어 사용은 피하겠다"며 "앞으로 유저들이 분명하게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명확한 원칙에 따라서 용어를 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보보보' 불가능한 큐브의 진실··· 넥슨, 10년 만에 입 열다  

큐브(아이템 옵션을 추가할 수 있는 유료 강화 수단) 시스템에서도 조작 논란이 이어졌다. 큐브는 무작위로 아이템에 총 세 가지 추가 옵션을 달 수 있다. 원하는 옵션이 나올 때까지 돌리는 구조로 작동 방식이 '슬롯머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제는 넥슨이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 옵션을 최대 두 개까지만 설정되도록 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또 특정 옵션이 뽑힐 시, 다른 옵션이 높은 확률로 강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수천만원을 쏟아부어도 '보보보' 옵션 획득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해당 옵션은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 옵션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유저들은 공개된 사실에 무기력함과 박탈감을 호소했다.

한 유저는 "사기당한 기분이다. 모자(아이템)에 원하는 옵션을 띄우기 위해 600만원을 썼다"며 "(넥슨이 공지로) 알려주지 않았다. 정신적 피해 배상까지 받아 내고 싶은 심정이다"고 성토했다.

특히 유저들은 과거부터 이 부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지만, 넥슨은 그동안 진실을 함구해왔다. 최근 조작 논란이 불을 뿜자 10년 만에 입을 연 것이다.

넥슨 측은 "2011년 8월 레전드리 잠재능력이 처음 추가될 당시의 보스 사냥이나, 아이템 획득의 밸런스 기준점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라며 때늦은 해명을 했다.

그러나 넥슨이 이같은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영상 과실 등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커뮤니티에는 다량의 게임 재화 및 현금을 소비한 유저 피해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동시에 넥슨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넥슨 "환골탈태의 각오로 고객 신뢰 회복 다하겠다" 

넥슨은 지난 5일 기존에 공개해 온 캡슐형 아이템은 물론 '유료 강화·합성류' 정보까지 전면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상은 기존 게임을 포함한 신작들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는 기존 자율규제 틀에서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강화·합성 확률 공개는 유료와 무료 재화·재료들이 결합될 여지가 많아 현행 자율규제 강령에 의하면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

넥슨이 보다 높은 수준의 확률 공개를 시도한 까닭은 부정적인 여론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강원기 디렉터를 필두로 총 2회에 걸친 사과문 게재, 추가 공지로 사건 진화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저들의 의혹만 증폭되며 역효과만 났다.

강 디렉터는 이날 확률표 공개와 함께 사과문으로 "환골탈태의 각오로 고객님들의 신뢰 회복에 전심전력을 다하겠다"며 "변명의 여지 없이 죄송하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확률형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확률 공개를 기점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확률 요소가 정상적으로 작용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메이플 유저 "조작 사실 인정해야··· 여전히 진정성 없어"

반면 유저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사과문이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관련 근거로 개발진이 확률 조작 논란에서 '조작'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오류'라는 표현을 써가며 책임 회피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넥슨이 제시한 보상도 문제 삼았다. 관심을 모았던 추가옵션, 어빌리티 오류에 대한 배상을 운영진이 2년치만 지급키로 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로그 보관 기간의 한계로 2년치의 데이터만 남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저들은 즉각 반발했다. 추가옵션 시스템이 적용된 지 8년이 넘었는데 6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고작 2년치만 돌려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 유저는 "나머지 6년치는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며 "아울러 정작 피해를 많이 본 것은 고자본 유저인데 현재 보상에선 이들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 유저는 "중요한 건 게임보상의 양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인 조작행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구체적인 개선점"이라며 "게임 보상만 열거하며 앞으로 잘 하겠다는 말로 퉁치려는데 유저 수준을 얼마나 얕보면 이렇게 막나가는가 싶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