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MMORPG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엔씨소프트를 먹여 살렸던 '리니지'의 IP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일면서다. 동시에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가 글로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양사의 명암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특히 올해 게임사들 사이에서 글로벌 진출이 주요 화두인 만큼, 향후 K-MMO을 이끌 새로운 선봉장으로 로스트아크(이하 로아)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리니지의 기세는 지난해부터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2020년도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연간 매출은 각각 8287억원, 8496억원이었지만, 2021년도 들어서 5459억원, 6526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엔씨 측은 게임 서비스가 장기화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매출이 줄었다고 설명했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사실상 리니지표 고과금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엔씨가 지난해 내놓은 신작 트릭스터M, 블레이드 & 소울2 등은 모두 부진을 겪었다. 바로 리니지식 BM 때문이다. 두 게임은 리니지의 대표적인 펫, 변신 시스템이 이름만 바뀐 채 그대로 도입됐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많은 유저들이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됐다.

리니지 IP의 글로벌 전망도 밝지 않다. 서구권에서 페이투윈(P2W)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점과 부족한 인지도가 흥행에 암초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지은 대신투자증권 연구원은 "리니지W의 2권역 출시가 리니지 IP의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1권역만큼의 흥행 성과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로아는 상황이 다르다. 국내, 글로벌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다. 도화가 업데이트 당일에는 국내 PC방 점유율 순위 2위를 꿰찼고 지난 16일에는 스팀 최고 동시 접속자수 132만명을 기록, 역대 2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MMO 장르의 벽을 허물고 전세계에서 호평을 이끌어내면서 더욱 주목받는 중이다.

그렇다면 로아의 흥행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첫 번째로 '착한 과금'에 있다. 로아는 패키지와 만원대의 저렴한 버프형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과금을 유도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수천만원대의 뽑기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유저들의 플레이와 컨트롤 여하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리니지와 차별화된 부분이다. 접근성도 좋다. 점핑권을 사면 특정 레벨대를 쉽게 달성할 수 있어 웬만한 콘텐츠를 즐기기에 어려움이 없다. 

반면 리니지 류의 게임은 너무 헤비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재화와 시간을 쏟아부은 정도에 비례해 캐릭터가 강해지는 특성 때문이다. 특히 수동 컨트롤이 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과금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과금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덜하기에 로아가 훨씬 다양한 유저층을 포섭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도 역시 라이트유저 친화적인 운영에서 오는 차이에 있다. 대다수 리니지 게임들은 업데이트 방향이 소수의 '고래 유저(고과금 유저)'를 위한 하드 콘텐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테면 리니지M에 추가된 '유일 등급' 뽑기의 경우 소과금 유저는 시도 조차 할 수 없다. 뽑기 도전에만 수억원이 소요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필드 PK(Player Killing)가 빈번하다는 환경적 요인도 라이트유저가 설 자리를 더욱 잃게 만든다. 결국 게임이 지속될수록 상위 유저가 독식하는 형태로 가게 된다. 

MMO에서 이러한 역삼각형 생태계가 주는 교훈은 크다. 흔히들 고인물만 남았다고 하는 표현은 게임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지칭한다. 상위 유저 입장에선 강함을 과시할 상대가 없다면 더 이상의 성장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남은 고래 유저들끼리 끝이 없는 과금 경쟁만 하며 소모적인 출혈만 유발할 뿐이다.

로아도 이러한 맹점을 알고 있다. 수평적인 콘텐츠 확보에도 힘을 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우징 시스템을 비롯해 다양한 미니 게임들을 추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완급조절을 통해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의 성장 갭을 줄여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오죽하면 디렉터가 나서 하드 레이드 유저를 대상으로 "할 콘텐츠가 없으면 잠깐 다른 게임을 하고 오세요"라는 말까지 전할 정도다.

분명한 것은 로아의 이러한 운영 방식이 글로벌에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K-MMO의 편견을 깨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도 눈 여겨볼 부분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엔씨도 최근 변화를 시사했다. 모바일 게임만이 아닌 콘솔, PC로도 플랫폼 확장을 선언했고 특히 차기 MMORPG인 TL(Throne and Liberty)에서는 리니지의 이름표를 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리니지'라는 이름이 없어졌다고 글로벌에서 성공할 리 만무하다.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닌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여전히 리니지식 BM과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그저 신작 TL이 '또 리니지'의 재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