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금융권인 은행, 그리고 금융사 전반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우리은행 본점에서 터진 600억원대 횡령 사건 후폭풍이다.

이번 우리은행 횡령 사태는 거액의 금액도 금액이지만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씩 밝혀질수록 허술한 은행 내부 관리체계 대한 놀라움이 더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직원 한 명이 2012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600억원이 넘는 돈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빼돌렸음에도 지난 10년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우리은행 검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은 최근 조사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진 614억원 외에도 50억원 규모 회삿돈을 더 빼돌린 정황을 포착해 경찰에 알렸다. 금감원이 수시 검사를 진행하며 추가적인 범죄 혐의를 파악 중인 만큼 앞으로 횡령액이 더 늘어날 여지도 충분한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횡령 관련 금액을 일단 전부 손실로 처리했다. 횡령금이 크고 회수 가능성도 불투명하지만 한 해 2조3000억원 넘게 버는 대형은행이 감당 못 할 수준은 절대 아니며, 고객들이 은행에 맡겨둔 예금을 날릴 걱정을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다른 곳도 아닌 시중은행에서 벌어진 이번 대규모 횡령 사건을 두고 금융소비자 대다수는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고객들에게는 계좌 하나 개설할 때도 이것 저것 요구하며 까다롭게 따지면서 정작 은행 내부 관리는 허술하게 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쓴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 올해 초 국내 임플란트 전문 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에서 국내 상장사 중 역대 최대 규모인 2000억원대 횡령 사고가 터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일반 기업에 터진 횡령 사건은 다소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바라봤다면 금융기관인 은행에서 벌어진 횡령 사건은 ‘내 피부에 직접 와닿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거의 없는데다 그동안 자신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으로 철석같이 ‘신뢰’하고 있던 영향이 크다. 신뢰에 금이 가면서 나오는 파열음인 셈이다.

이번 횡령 사건 여파로 “주거래 은행을 다른 곳으로 바꾸겠다”는 일부 우리은행 고객들의 엄포는 당장 실제로 손해를 입은 게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은행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깨져 더이상 거래가 어려움을 의미한다. 어쩌면 약 600억원을 잃은 것보다 우리은행 입장에서 더 뼈아픈 일이다.

더욱이 이번 횡령 사태는 우리은행에만 한정되지 않고 은행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은행에 이어 신한은행에서도 2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름을 부었다.

신한은행의 경우 우리은행에 비해 금액이 적고 내부 자체 감사를 통해 빠르게 사건을 수습했다고는 하나 은행권 내 연이어 발생한 횡령 사고는 은행이 그동안 구축한 신뢰를 깎아먹고 있으며 결국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외에 다른 은행이라고 다를바 있겠느냐는 의구심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계기로 현재 은행들은 부랴부랴 내부 통제 시스템 긴급 점검과 함께 자체 감사에 한창이다. 금감원은 최근 증권사에도 자체 내부조사를 실시하도록 주문하는 공문을 내렸다. 이에 앞으로 금융권 전반에서 추가로 횡령 의혹이 속속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상존한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외에도 LG유플러스, 계양전기, 클리오, 아모레퍼시픽 등 올해 상반기에만 줄줄이 터져 나온 횡령 소식에 ‘횡령이 트렌드’라는 조소가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금융사가 가져야 할 책임감과 무게감은 다른 산업과는 또 다르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은 신년 혹은 취임 일성으로 의례 ‘고객 신뢰’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고 나선다. 단순 나열이 아닌 이제 그 진정한 의미를 다시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