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금융권 가계대출 관리에 고삐를 바짝 조이자 성장 한계에 부딪힌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기업대출 시장에서 새 활로 찾기에 나섰다.

특히 최근 들어 은행들은 기업대출 확대에 더욱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연간 상한선(6%대 증가율) 내 총량관리에 애를 먹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가계대출이 역성장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실제 은행들의 기업대출 규모는 올해만 벌써 53조원 이상 증가한 반면에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1000억원가량 줄었다.

대출규제와 더불어 급격한 금리 상승, 부동산 시장 침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가계대출 수요가 급감하자 은행들은 증가율 관리는커녕 오히려 가계대출 감소·정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조였던 대출 한도를 하나둘씩 풀고 우대금리를 부활시키는 등 대출 문턱을 낮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위축된 가계대출 수요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4월 가계대출이 5개월 만에 반등한 이후 지난달 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으나 증가폭은 4000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가계대출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은행들이 기업대출 영업에 더욱 발 벗고 나서면서 기업대출 규모는 지난달에만 13조원 이상 늘어 역대 두 번째로 큰 폭 뛰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시기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 시중은행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기업대출 시장에 올해부터는 인터넷은행들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가계중심 신용대출 상품에 국한된 여신 포트폴리오로는 더 이상 성장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불어난 기업대출 70% 이상이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와 은행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경제 최대 뇌관으로 떠올랐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된 점은 다소 긍정적이나 풍선효과로 늘어난 기업대출, 이 가운데서도 개인사업자대출의 부실화 문제가 또 다른 걱정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대출 원금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등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오는 9월 예정대로 종료되면 그동안 가려졌던 부실이 가시화될 우려가 크다.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리스크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부채 리스크까지 부각되면서 ‘빚 폭탄’이 터지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법 찾기에 정부와 은행권의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