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과 대출간 이자격차인 예대마진 확대를 통해 손쉽게 수익을 늘리는 은행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원이라지만 전체 이익 가운데 90%가 이자이익에서 나올 정도로 수익구조가 편향돼 있다 보니 경영 혁신이나 새로운 수익원 발굴은 등한시한 채 ‘땅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에만 몰두해 사상 최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한은이 지난해 8월 이후 약 9개월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포인트(p) 올리는 등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를 맞아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장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더 매서워진 형국이다.

금리 인상기 예대금리차 확대는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가파른 대출금리 상승으로 서민들의 이자 부담 고통은 커지고 있는 반면 은행들은 역대급 이자이익으로 돈방석에 앉자 보란 듯이 통 큰 성과급 잔치까지 벌였으니, 이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여론 악화 속 은행들은 눈치껏 지난해 말부터 한국은행 기준금리 상승분을 반영해 예금금리를 부지런히 올렸지만 뚜렷한 예대금리차 축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례적으로 대출금리까지 앞다퉈 낮추고 있다. 이에 지난달 연 7%를 넘어섰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6%대로 다시 내려앉았다.

급기야 신한은행은 지난 6월말 기준 연 5% 초과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고객의 금리를 앞으로 1년간 연 5%로 일괄 감면하고, 그 이상의 초과분은 은행이 떠안기로 하는 내용의 파격적인 취약 차주 지원 방안을 내놨다.

신한은행에 이어 하나은행도 연 7%를 초과하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개인사업자 고객들의 대출 만기 도래 시 연 7%를 초과하는 금리에 대해 최대 1%p까지 감면토록 하는 등 금융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다른 시중은행들도 취약 차주의 대출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조만간 신한·하나은행 등을 좇아 비슷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거나, 자체적으로 강구한 다른 방안을 꺼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같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하 노력이 고통 분담을 위한 자발적 행보라면 그림이 아름답겠으나, 전혀 그렇진 못한 형편이다. 표면적으론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 차주를 선제적으로 보호·지원하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과도한 예대금리차를 겨냥한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 강도가 연일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따라붙는다. 한마디로 ‘울며 겨자 먹기’ 중이다.

특히 그동안 예대마진 비판 여론에 대한 나름의 ‘맷집’이 생겼던 은행들을 이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든 건 첫 검찰 출신 금감원장인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달 20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내놓은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임한 후 처음으로 주요 시중은행장들과 만난 이 원장은 “은행권의 금리 운영과 관련해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지나친 이익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따라서 은행들은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은행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위기 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다른 산업과 달리 은행의 공공적 기능과 사회적 책임 이행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고통 분담은 외면한 채 과도하게 수익성만 추구할 경우 여론의 질타가 뒤따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으론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이며, 공공성만큼이나 상업성이 중요한 조직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아무리 공적 역할이 중요한 은행이라도 정부가 시장가격인 금리에 개입하는 건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판단을 차치하더라도 결국 ‘관치금융’이라는 꼬리표를 따라붙게 만든다.

가격 결정은 시장 자율의 영역이다. 정부가 은행에 지나치게 공공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은행 건전성이 악화되거나 시장이 왜곡되는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금리 결정은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타당하지 않고 지나치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은행들이 금융소비자들로부터 폭리를 취하거나 예대금리차가 불합리하게 확대되는 등 부담이 전가되는 부분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공익성과 상업성의 조화를 찾는 일은 언제나 은행권 과제로 남아있다. 정부 손길이 닿기 전 은행 스스로 과도한 예대금리차 개선 및 고통분담 노력을 보여줄 수 있던 타이밍은 차고 넘쳤다. 그동안 미적거리던 은행들이 신임 금감원장이 날린 ‘이자장사’ 경고장에 화들짝 놀라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반응하는 지금의 모습은 관치의 족쇄를 스스로 채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