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 등 전통적인 금융사들이 본업과 관련 없는 통신·유통 등 다양한 비금융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는 일이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내년 시행을 목표로 금융자본(금융회사)과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이 결합을 막는 금산분리 제도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기로 하면서다.

현행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4%까지만 소유할 수 있으며 은행 역시 비금융사 주식을 15% 이상 소유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더욱이 금융사들은 법에서 허용된 금융업에 부수되는 업무만 할 수 있다.

이러한 금산분리는 1982년 국유화됐던 시중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은행이 재벌·대기업들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서, 금융안정 및 이해상충 방지 등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평가받는다.

그러나 4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금산분리를 낡고 불합리한 규제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기존 금융규제가 금융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디지털 기술 발전과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현상이 급격히 부각됨에 따라 금산분리 제도도 시대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한층 더 커졌다.

이에 금융당국도 금융회사의 디지털화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로 금산분리를 콕 찝어 내년 초 구체화 방안 마련을 목표로 제도 개선을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규제 혁신으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 금융산업에서도 BTS처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이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기본 원칙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만큼 금융안정을 위한 금산분리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금융업과 비금융업간 시너지 제고를 위한 조치로서 금산분리 제도 중 금융회사의 부수업무 및 자회사 출자범위를 확대·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공정하지 않은 규제 역차별 환경에 대해 불만을 쌓아왔던 금융사들은 드디어 ‘기울어진 운동장’이 ‘넓고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에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비금융업 진출이 엄격히 제한된 금융사들과 달리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을 통해 상대적으로 금융업 진출이 자유로운 편인데, 이에 강력한 플랫폼을 무기로 최근 몇 년 사이 거침없이 금융시장에 침투 중인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을 속수무책 바라보며 속앓이했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비금융업인 알뜰폰·배달앱 시장에 각각 뛰어든 KB국민은행(리브엠)과 신한은행(땡겨요) 등의 사례가 있긴 하나, 이는 그야말로 임시방편으로 최대 4년이라는 지정 기간이 종료되면 사업 영속성과 안정성을 보장받긴 어려운 구조다 보니 한계가 분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산분리 족쇄가 느슨해져 비금융 분야 사업 문턱이 낮아지면 은행 등 금융지주사들도 예대마진에만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벗어나 신성장동력을 장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다만 제도 개선을 통한 궁극적 목표가 단순히 공급자의 발전과 성장에만 집중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금융은 혁신도 중요하지만 안정과 균형도 중요한 산업으로, 그 중심에는 결국 금융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규제 합리화 과정에서 소비자 선택권과 편익이 얼마나 증대될지, 혹시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구멍이 생길 일은 없는지를 두고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술대에 오른 금산분리를 두고 최적의 방안, 적정선을 찾는 것이 당장 풀어야 할 최대 숙제로 떠올랐다. 아무쪼록 금융당국도 금융사도 규제 혁신의 궁극적 목표와 의미가 무엇에 있는지 늘 되새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