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안종열 기자.
글로벌경제신문 안종열 기자.

 

국가 경제를 좌우할 핵심 법안인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이 수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무기로 떠오른 반도체의 패권을 잡기 위해 세제 인하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과 대조적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한국이 2030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 세계 최고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으로,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묶어 내놓은 법안이다.

골자는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와 반도체 학과 증원, 시설 투자액 20% 세액공제 등이다. 즉 인허가, 인력 충원, 세제 등에서 경쟁국과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 패권 전쟁의 향배를 가를 핵심 산업이자 안보와도 직결된 전략 자산이다. 이에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미국은 천문학적인 보조금 투입과 더불어 반도체 공장이나 장비 생산시설 건설 시 25%의 투자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세계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미국의 미래에 지금보다 더 낙관적인 적이 없다. 우리는 더 나은 미국을 만들고 있다”며 반도체 분야에서의 미국 제조업 부활을 강조했다.

EU는 올해 2월 '유럽 반도체법'을 발의, 2030년까지 민관 투자를 통해 430억 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EU 비중을 현재의 9%에서 최소 20%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 역시 68억달러 규모의 인센티브 패키지를 조성했다. 현재 TSMC가 추진 중인 구마모토현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 1조2000억엔 중 40%를 지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회 문턱 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긴 했지만, 야당에서 '풍력발전특별법'과 함께 묶어 처리하자는 의견을 내 이번 회기 내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경쟁국들은 의회가 앞장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를 외치는 우리나라만 답보상태다. 산업계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법안 통과는 제쳐두고 길어지는 반도체 한파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트 공사 지연 등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20일까지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은 한 해 전보다 24.3% 하락했다. 업황의 하강 국면을 맞은 반도체 수출은 이달까지 다섯달 연속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도체 수출의 하락 폭은 올해 9월 -4.9%, 10월 -16.4%, 11월 -28.6%로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4분기 실적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포함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발표된 지 3년 10개월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토지보상 등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공사기간이 2년 이상 지체됐으며, 사업비도 30% 이상 올랐다. 

우리나라는 K-반도체를 세계 1위 위치에 올려놓으려 한다. 하지만 액션은 없다.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다. 투자의 적기를 놓치면 산업 주도권도 놓치게 된다. 여야의 정쟁으로 반도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