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 여신 건전성에 작은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계속되자 그동안 사상 최저 수준을 이어오던 은행 대출 연체율이 야금야금 오르며 심상치 않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27%로, 전월 대비 0.02%포인트 올랐다. 전월 0.03%포인트 오른 데 이어 2개월 연속 오름세로 2021년 8월(0.2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에도 대형 시중은행의 주요 대출 상품 연체율은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연체율 평균은 3개월 전인 9월 대비 모두 올랐다.

2019년 이후 지속 하락해 온 은행권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6월 말에는 0.20%로 역대 최저치를 찍은 바 있다. 이후 여전히 0.2%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조금씩 오르고 있는 은행 대출 연체율 추이를 예사로 봐 가벼이 넘길 수만은 없다.

은행들은 분기 말이나 연말 연체채권 관리를 강화한다. 이에 통상적으로 은행 연체율은 분기 초·중반 상승했다가 분기 말에 하락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지난해의 경우 연말임에도 오히려 연체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은행보다 금리가 비싼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연체율 상승 흐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체율이 들썩인다는 건 그만큼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부담을 감당하기 버거워진 취약차주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지난해 숨 돌릴 틈 없이 오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가 본격화될 조짐은 아닌지 우려가 뒤따른다.

지난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5개월 동안 기준금리가 연 0.5%에서 3.50%로 3.00%포인트나 뛰면서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올라 가계와 기업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64조원 이상 불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이 금융권 안팎에서 그동안 낮은 연체율이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에 따른 착시효과일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향후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 효과가 소멸될 경우 고금리 기조와 맞물려 소상공인·취약차주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역시 아직 은행들이 낮은 연체율을 유지하고 있고 상승폭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최근 소폭 상승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은행에 선제적인 대손충당금·준비금 추가 적립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도 나섰다. 한 마디로 은행 내부에 부실 대비 돈을 더 쌓으라는 이야기다.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에 따른 신용손실 확대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은행들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연체율 추이를 지속 모니터링하는 한편 취약차주 이자감면 등 은행별 금융지원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며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기업과 가계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올 한 해 금융권의 최우선 과제는 첫째도 둘째도 철저히 건전성·리스크 관리로 맞춰져야 한다. 불확실성과 복합위기 속 과유불급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