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5대 시중은행 중심으로 견고히 구축된 과점 체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여러 개의 돌을 던져보고 있다.

금리 인상기를 틈타 수익원 다변화 노력 없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에 안주한 시중은행들이 사회적 책임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성과급·퇴직금 등 이른바 ‘돈잔치’를 벌인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은행업 과점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면서다.

당국은 치열한 경쟁이나 혁신 노력 없이 그저 나눠먹기식 우물 안 영업만 벌이는 은행들의 행태가 뿌리 깊은 과점 체제에 기반하며, 그 결과 금융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편의·효용까지도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실질적인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이미 운영 중인 스몰라이선스·챌린저 뱅크(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등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그들 만의 리그’로 전락한 5대 은행 중심의 느슨한 시장에 신규 플레이어, 이른바 ‘메기’를 풀어 움직임이 무거워진 기존 은행들에 긴장감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벤처기업대출 전문은행과 주택담보대출·지급결제 특화은행, 중저신용자 전문은행 등과 같이 기존 은행이 수행 중인 업무범위를 쪼개는 방식으로 설립된다는 점에서 기존 메기를 역할을 자처하며 진입한 인터넷은행들과 차이를 둔다.

소규모로 특화된 분야에 강점을 가진 신규 플레이어 진입이 경쟁을 촉진시키고 그로 인해 가격인하, 서비스 양질화, 소비자 선택권 확대, 기존 은행서비스 공백 해소 등 소비자 후생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현재로선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는 점이다. 완화된 인가기준에 따라 소규모 전문은행 난립해 시장이 혼탁해지고 건전성 리스크 상승과 부실화 가능성, 소비자보호 문제 발생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염려다.

실제 지난 10일(현지시간) 일어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특화은행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단적인 예가 됐다. 공교롭게도 SVB는 금융당국이 앞서 지난 2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 첫 회의에서 소규모 특화은행의 해외사례로 콕 찝어 언급한 은행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금융당국은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총자산 2000억달러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자 지난 40년간 미국 신생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SVB조차도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주가 폭락으로 파산에 이르는 데 소요된 기간은 단 이틀에 불과했다. 하물며 소규모 특화은행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역시 SVB 파산 사태의 원인으로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더불어 특수한 영업구조를 지목한다. 특화은행 도입 등 은행업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 대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랜 기간 고여있는 은행산업에 경쟁 촉진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혁신을 불어 넣는 일도 분명히 필요한 일이지만 소비자 보호, 건전성 보장 측면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금융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건 결국 ‘안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