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공포에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가계대출이 다시 들썩이며 심상치 않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최근 3개월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달에만 무려 5조9000억원이나 늘었다. 이는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다. 본격 반등을 시작한 2분기(4~6월) 동안에는 은행 가계대출이 총 12조4000억원 증가했다.

16개월째 내리 줄던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도 소폭이지만 증가 전환한 뒤 2개월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신용대출은 계속 줄고 있지만 규제 완화로 주택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체 가계대출 상승을 견인 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 가계대출은 이달에도 증가세가 예견된다.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은 은행 입장에서 이익 창출 기반이 되는 가계대출 자산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점은 일견 반가울 수도 있다. 그동안 늘어난 이자 부담과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에 가계대출 수요가 급속도로 줄자 은행들은 수익 보존을 위해 기업대출로 방향을 틀고 대출자산을 늘리는데 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은행들도 현재 가계대출 증가세를 마냥 반길 순 없다. 최근 건전성 지표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늘어나는 가계대출은 금융사 입장에서도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경계 대상이다.

실제 코로나19 금융지원에 따른 착시효과 등으로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던 은행 대출 연체율이 올해 들어 급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40%로, 전월보다 0.03%포인트(p) 올랐다. 이는 지난 2020년 5월(0.42%)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숨 가쁘게 이어져 온 금리 인상 여파가 본격화되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자 상환 능력 이 떨어지는 취약차주 중심으로 빚을 제때 못 갚는 대출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중·저신용자들이 몰리는 상호금융·저축은행·카드사 등 2금융권의 연체율이 악화되고 있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연체율 상승과 맞물려 증가세 돌아선 가계대출은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은 듯 보였던 가계부채 누증 문제를 다시금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최우선 당면 과제 자리에 재위치시키고 있다. 과도하게 불어난 가계부채는 금융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산다.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이자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은행도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늘어난 가계부채로 인해 당장 금융불안정이 확대될 위험은 제한적이라면서도, 경제 규모 대비 세계 3위권 안에 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그대로 손 놓고 있다간 장기적으로는 소비가 위축되는 등 성장률의 발목을 붙잡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3일 열린 7월 금통위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크게 늘면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높아지는 가계부채 위험을 두고 ‘회색 코뿔소’와 ‘퍼펙트 스톰’이 온다는 비유가 쓰인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 시그널이 나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퍼펙트 스톰은 초대형 복합 위기를 뜻한다.

가계부채에 켜진 경고등이 점차 빠르게 깜빡거리며 긴장감이 감돈다. 오랜 기간 폭발력이 응축될 대로 응축된 ‘빚 폭탄’이 터졌을 때 우리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미칠 파급력과 해악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늦기 전에 가계부채 질적 구조 개선 및 건전성 관리를 통해 위험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한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대출규제를 재정비하는 등 금융당국의 선제적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