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제 야스쿠니 신사 류슈칸을 나와서 주변을 돌아본다. 근처엔  ‘호국 해방함(海防艦)’ 비가 있다. 여기엔 함정(艦艇)이 하나 있고, 뒤에는 해방함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호국 해방함 비. 사진=김세곤 제공
호국 해방함 비. 사진=김세곤 제공

바로 왼편에는 ‘팔 판사 현창비(顯彰碑)’가 있다. 인도의 라다 비노드 팔(Radha Binod Pal,1886~1967) 판사는 도쿄 재판에 참여한 11개국의 판사 중 유일하게 전범 전원에게 무죄 의견을 낸 일본 우파들의 영웅이다. 

2005년(평성 17년) 6월 25일에 세운 현창비는 법복 차림의 사진 옆과 아래에 일어와 영어로 된 팔 판사의 어록이 적혀있고, 사진 맨 아래에는 송덕비문이 있다. 이 비는 음성 가이드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책임자인 궁사(宮司)의 송덕비문에는 " 팔 박사는 도쿄 재판의 인도 대표 판사로 ...  도쿄 재판이 대다수 연합국의 패전국 일본에 대한 야만적인 복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 팔 판사의 재정(裁定)은 바야흐로 문명 세계 국제법학계의 정설로 인식되고 있다." 라고 적혀 있다. (현창비에 새겨진 팔 판사의 어록과 송덕비문은  완역이 필요하다.)

팔 판사 현창비. 사진=김세곤 제공
팔 판사 현창비. 사진=김세곤 제공
송덕비문. 사진=김세곤 제공
송덕비문. 사진=김세곤 제공

2005년 6월 27일 세계일보는 ‘[설왕설래] A급 전범’이란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야스쿠니 신사 측이 지난 25일 “이들은 범죄인이 아니다”며 전범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신사 측은 국제 전범재판관 11명 가운데 모든 전범에 대해 유일하게 무죄 의견을 낸 라다비노드 팔 인도 판사를 기리는 비석을 경내에 세우고 이날 버젓이 그 제막식까지 올렸다. 이 비석 건립을 지원한 ‘이상을 생각하는 모임’ 관계자는 “역사에 대한 자학적 풍조 등의 근원은 도쿄재판에 있다.”면서 ‘일본 무죄론’을 강변했다고 한다.
‘침략’을 ‘진출’로 미화하고 ‘가해의 역사’를 ‘시혜의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일본 우익의 자기합리화가 날로 그 도를 더해간다. 한국과 중국, 동남아에 식민지 지배의 상흔이 아직 생생한데도 저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팔 판사 현창비 안내판. 사진=김세곤 제공
팔 판사 현창비 안내판. 사진=김세곤 제공

한편 류슈칸의 ‘극동국제군사재판 소개’에도 일본은 팔 판사의 발언을 크게 다뤘다.

"도쿄재판은 야만적 복수“
" '일본이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이 침략의 폭거를 했다'는 등의 비뚤어진 죄악관을 짊어지고 비굴, 퇴폐로 흐르는 것을 나는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 잘못된 역사는 바뀌어 기록되어야 한다“

이 두 문장에 A급 전범을 신으로 모시는 일본의 속내가 들어 있다.  

그러면 팔 판사는 누구인가? 그는 1941년에 캘커타 고등법원 판사가 되었고, 1944년에는 캘커타 대학 총장에 취임하여 1946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주로 세법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도쿄재판에 참여하면서 국제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판 초기부터 팔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침략전쟁 소급적용에 관하여 홀로 비판적인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쟁범죄와는 별개로 재판소가 A급 전쟁 범죄(평화에 대한 범죄)라는 성문화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을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2년 6개월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팔은 전범 전원에 대하여 무죄론을 주장했다. 도쿄 재판이 '정의의 심판'이 아니라 '승자의 복수'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팔은 연합국 판사들이 작성한 공명정대한 재판 운영을 다짐하는 공동선언문에 유일하게 서명하지 않았고, 466일의 공판기일 중 109일이나 재판에 결석하여 판사 중 가장 불성실했고, 피해자들이 제출한 일본의 전범 행위 증거물도 제대로 살펴보는 경우도 없었고, 무엇보다 재판 자체에 성의없는 행동으로 무책임한 태업 행동을 하였다. 

팔은 일본군을 아시아를 해방시켜 줄 구원자로 여겼고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며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벌인 약탈과 학살들을 모두 부정했다.

그는 팔은 전범들을 모두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중국 판사를 강력하게 비난하였고 심지어 미국, 영국, 소련 판사들에게도 비난을 서슴지 않으며 전범 무죄론을 주장했다.

한편 팔의 전범 무죄 주장은 뼛속까지 '친일'이었던 그의 전력으로 보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일본과 손잡고 영국의 인도 식민통치에 대해   무장투쟁을 벌인 찬드라 보스를 지지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를 대놓고 옹호했다.

결론적으로 팔 판사에게는 일본의 기만적 '대의'만 보이고 일본이 중국 · 한국 등 아시아인들에게 끼친 ‘약탈과 고통’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