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터진다는 표현도 이제는 과분하다. 그야말로 잊힐 새도 없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사, 더욱이 2금융권도 아닌 1금융권 은행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횡령 등 각종 금융비리 사건·사고 이야기다.

지난 2일 BNK경남은행에서는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담당하던 직원이 7년에 걸쳐 총 562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확인됐다. 수시 상환된 대출원리금을 본인 가족 등 제3자 계좌로 임의 이체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등의 전형적인 횡령 수법이 동원됐다.

이어 지난 9일에는 KB국민은행 증권대행부서 직원들이 고객사의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주식거래로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적발됐다. 업무상 얻게 된 정보로 본인은 물론 타부서 동료직원과 가족·친지·지인까지 끌어들여 사익을 추구한 것이다.

다음 날인 10일 DGB대구은행 직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 동의 없이 증권계좌 1000여개를 몰래 개설한 정황도 밝혀졌다. 1개 증권계좌를 개설한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 동의 없이 다른 증권계좌를 추가 개설하는 수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고객에 해당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개설 안내문자(SMS)를 차단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이달 수면 위로 드러나 국민들의 경악을 자아낸 굵직한 은행 금융사고 건수만 벌써 3건이다. 시중은행·지방은행 가릴 거 없이 은행 직원들의 일탈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으면서 일각에선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진다.

제 것이 아닌 생선을 탐낸 고양이에 대한 엄중한 처분은 당연하다. 불법 행위로 얻은 이익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한 솜방망이 처벌은 본인은 물론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에 ‘또 해도 된다’는 학습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

하지만 단순히 고양이에게만 모든 화살을 돌려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설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 해도 훔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꼼꼼하게 설계된 2중·3중의 안전장치와 감시체제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번번이 너무도 허술하게 구멍 뚫린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과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소홀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700억원대 초유의 횡령으로 지난해 금융권은 물론 대한민국 자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우리은행 사태를 계기로.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함께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명령휴가 제도, 직무분리 제도, 내부고발자 제도 등 기존 형식적으로 운영 중이던 사고예방조치에 대한 강제력을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도돌이표처럼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논하고 있다. 기존 내부통제 방안에 허점이 있거나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잃을 대로 잃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금융업을 지탱하는 근간은 ‘고객 신뢰’에 있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당국과 은행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내부통제 강화’ 목소리가 두 번 다시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몇 번이고 고쳐져야 하며, 당연히 잠금쇠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수리돼야 그 의미가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