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시장에서 50년 만기 초장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본격 출시된 지 1~2개월여 만에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고질적 뇌관인 가계부채 누증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자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여파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경고’ 메시지에 압박감을 느낀 은행권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앞서 자체적으로 판매를 잠정 중단하거나 나이 제한 등의 조치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50년 주담대에 급제동을 거는 과정에서 오히려 대출 ‘막차 탑승’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등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만 최근 한 달 사이 2조원 넘게 불었다. 언제 대출이 막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받을 수 있을 때 일단 받고 보자 식의 수요가 늘어난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홍보글이나 절판 마케팅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한창 기승을 부렸다.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가 된 50년 주담대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에서 찾을 수 없던 상품이다. 기존 은행권의 주담대 최장 만기는 40년이었다. 심지어 40년 주담대도 출시 1년을 막 넘겼을 뿐으로, 작년에는 한창 최장 40년 주담대 상품이 막 은행권에 확산하기 시작해 화두라면 화두였다.

원리금 상환 부담 경감과 고객 선택권 확대 등을 취지로 40년 주담대가 표준으로 자리잡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올해 초 Sh수협은행이 은행권 내 가장 먼저 50년 주담대를 시장에 선보였다. 이후 반년 동안 이어진 신중모드를 깨고 지난 7~8월 사이 본격적으로 주요 시중은행, 국책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가릴 것이 없이 다수의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40년 주담대와 마찬가지로 보금자리론‧적격대출 등 정부 정책금융상품에 시범 도입된 후 민간 부문이 따라가는 나름의 공식도 그대로 답습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40년 주담대 도입 당시에는 가계대출이 이례적으로 줄고 있었고, 지금은 가계대출이 다시 늘고 있어 우려가 빗발치고 있는 시장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부채 관리 방안 중 하나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새삼스럽다.

만기가 길어지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이 줄어드는 만큼 DSR 규제를 피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은 40년 주담대 출시 시점에도 이미 명백히 ‘셀링 포인트’ 중 하나로 통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자칫 가계부채 확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당국의 태클은 없었다. 오히려 부동산 급등기 도입된 과도한 대출규제를 정상화하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일면 맞닿았다. 한 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정부 대응이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다.

은행권에서는 거듭된 가계대출 금리 인하 요구와 부동산 규제 완화, 그에 따른 시장 회복 기대감 등이 복합 작용해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은행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시장의 혼란 최소화를 위해 차라리 금융당국이 하루라도 빨리 정확한 규제 방안이나 가이드라인을 나와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1800조원을 넘어서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 대한 공감대는 시장에 충분히 형성돼 있다. 다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원인 파악, 규제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그리고 정확한 지침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혼돈의 시장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그렇듯 결국 금융소비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