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소크라테스(BC 470~399)가 변론을 마치자 배심원들은 판결하였다. 판결 결과는 배심원 501명 중 유죄 281명, 무죄 220명으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61표 차이였다. 

다음으로 형량을 정하는 2차 재판이 있었다. 먼저 고발인이 사형을 주장하자, 소크라테스가 변론을 하였다.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내게 유죄 투표를 던진 것에 대하여 내가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득표수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30표만 방향을 바꾸었다면 무죄 방면되었을 것입니다.
고발인은 저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제의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가요?
나는 결코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벌이를 하거나 군인으로서 혹은 대중 연설가로서 또는 공직자로서 출세하는 일이나,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당파싸움에 관심이 있지만 나는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일에 끼어들고서  살아남기에는 자신이 너무 정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 내가 최대의 봉사라고 여기는 것을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해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여러 주제들에 대하여 날마다 대화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최대한 훌륭하고 지혜로워지도록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공적에 합당한 형량으로, 프리타네움에서 나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주는 것을 제의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여러분에게는 고집불통이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타네움은 난로와 불의 여신이며 가정생활과 행복을 관장하는 헤스티아에게 바쳐진 건물로 아클로폴리스 북동쪽 비탈에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에서는 올림피아 제전 등 범(汎) 그리스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 도시의 저명인사 가족들, 외국 사절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

이처럼 프리타네움의 만찬에 초대받는 것은 아테네인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일 중 하나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인 그에게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소크라테스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마저 돌아서게 만들었다. 이들도 사형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이어진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의적으로 불의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확신하지만 이를 여러분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도 다른 나라처럼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단 하루 만에 끝내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재판하는 법률이 있었다면, 나는 여러분을 납득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토록 뿌리 깊은 선입관을 단시간에 해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어떤 형벌을 제의할지에 대하여 변론한다.   

“금고형을 제의할까요? 하지만 내가 왜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까? 매년 임명되는 11명의 옥사쟁이들에게 종노릇을 하면서 옥살이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면 추방형을 제의할까요? 아마도 추방형을 제의하면 여러분이 받아 들일 것 같네요. 그러면 나는 분명 목숨에 필사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되겠지요. 내가 이 나이(71세)에 이 나라에서 추방되어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다니다가 매번 추방되어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마 누군가 말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 갈 수는 없나요?” 
제가 조용히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핑계 대는 줄 알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날마다 캐물으면서 대화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더더욱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여러분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군요. 

끝으로 나에게 돈이 있다면 벌금형을 제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돈이 없어 은화 1므나(숙련된 장인이 100일간 일하고 받는 임금)쯤을 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세노폰에 따르면 1므나는 소크라테스 전 재산의 20%였다.) 덧붙여서 여기 있는 플라톤, 크리톤, 크리토블로스, 아폴로도로스는 자기들이 보증을 설 테니 30 므나의 벌금형을 제의하라는군요.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이제 판결만 남았다. 배심원들은 501명 중 361명이 사형에 표를 던졌다. 1차 재판 때 유죄라는 배심원 281명보다 80명이 늘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의 2차 변론이 배심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 감옥. 사진=김세곤 제공
소크라테스 감옥. 사진=김세곤 제공
소크라테스 감옥 안내판. 사진=김세곤 제공
소크라테스 감옥 안내판. 사진=김세곤 제공

( 참고문헌 )

-플라톤 지음·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숲,    2017, p 62-68 
-콜라이아코 지음·김승욱 옮김, 소크라테스의 재판, 작가정신, 2005,  p 30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