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안종열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업계는 8부 능선 정도는 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양사 각각의 손에 들린 봇짐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HBM의 무게다.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와 이를 추격하는 삼성전자의 접전이 눈에 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다. 1분기와 2분기 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올 3분기 2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년 동기 대비 77.9% 감소했으나, 3개 분기 만에 조 단위 '깜짝 실적'이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적자 규모를 3조700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1조8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4개 분기 연속 적자다. 다만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 기반으로 영업손실 규모는 전 분기 대비 감소했다. 같은기간 매출은 9조662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7.5% 감소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부진 상황에서도 나란히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거 탑재된다. 생성형 AI 서버에 탑재되는 HBM3 가격은 기존 메모리보다 6배 이상 높다. HBM이 수요뿐 아니라 수익성 면에서도 긍정적인 이유다.

HBM 시장은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SK하이닉스가 시장을 먼저 개척하고 앞서 나가고 있다. 기술력만 보자면 SK하이닉스가 약 1년 정도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 세계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 삼성전자가 40%다. 나머지는 미국 마이크론이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를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부진이 눈에 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HBM은 지난 2008년 미국 반도체 기업 AMD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세대와 2세대, 3세대까지는 큰 수요처가 없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19년 HBM팀을 해체했다. 하지만 올해 초 생성형 AI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엔비디아의 A100·H100이 함께 들어가는 4세대 HBM3 수요가 폭증했다. 이 수혜는 SK하이닉스가 그대로 받았다. 

삼성전자도 선두를 꿰차기 위해 최근 초고성능 HBM3E D램 '샤인볼트'를 처음 선보였다. 샤인볼트는 용량이 전작의 1.5배 수준으로, 초당 최대 1.2TB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전력 효율은 10% 향상됐다. 최근에는 고객사에 HBM3E 샘플을 전달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업계는 돌아올 호황기를 위해 무한 경쟁 채비를 마쳤다. 키워드는 HBM이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선도하고 있는만큼 그 무게와 비례한 혁신과 기술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