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2023년 10월 7일)으로 촉발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향배가 새해에도 불투명하다.

개전 이후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하마스 본거지인 팔레스타인 가지지구 주민 2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거주지가 황폐화된 상황을 지켜본 국제사회는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망자만 500명대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병원 폭발 참사 현장[AP 캡처]
사망자만 500명대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병원 폭발 참사 현장[AP 캡처]

특히 이스라엘의 가장 큰 우방인 미국이 나서 공세 약화와 휴전협상을 종용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이스라엘은 자국 인질 오인 사살, 팔레스타인 난민촌 오폭 등의 부작용에도 공세 수위를 늦추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레바논, 시리아 등으로 확전하는 모양새다. 특히 중동 패권을 노리는 이란의 움직임에 따라 자칫 5차 중동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이 나온다.

◇ 자꾸만 멀어지는 휴전 전망...美ㆍ이스라엘, 저강도 장기전놓고 밀당

민간인 피해 급증과 이에 따른 국제여론 악화에 따라 미국, 이집트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는 휴전 협상을 종용하고 나섰다.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과 이스라엘 교정시설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교환 조건이 핵심이다. 

'48일만에 고국으로'…하마스, 이스라엘 인질 13명 1차석방
'48일만에 고국으로'…하마스, 이스라엘 인질 13명 1차석방

그러나 정작 교전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턱도 없다"는 자세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를 뿌리뽑을 때까지"라는 강경태세로 일관해왔다.

하마스는 지속적인 휴전이 없는 한 인질 석방 협상은 아예 없다는 자세다. 하마스 간부인  자헤르 자바린은 뉴욕타임스(NYT)에 "모든 관련 당사자들에게 전달한 우리의 입장은 다른 사안에 앞서 포괄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스라엘 총리실 제공]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스라엘 총리실 제공]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전쟁 양상을 저강도로 낮추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중포, 미사일, 전폭기 등 고화력 장비와 보병들을 동원한 고강도 전쟁에서 대테러전과 도시전에 탁월한 특수부대에 의한 표적만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저강도(pin-pointing surgical operation) 장기전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의 최측근인 론 더머 전략 담당 장관이 최근 미국을 방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만나 저강도 전환 계획, 전쟁 이후 구상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자지구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가자지구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백악관 당국자는 양국이 하마스 지도부 등 표적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저강도 단계로 전환하는 방안, 종전 이후 계획, 남은 인질 석방 노력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도 5일께 이스라엘을 방문, 관련 논의를 이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전 후 6번째 이스라엘을 찾는 블링컨은 서안지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방문해 중동 상황 전반에 대해 숙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도 저강도 전투 단계로 들어갈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일(현지시간) 블링컨 미 국무장관(왼쪽) 다시 마주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EPA=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블링컨 미 국무장관(왼쪽) 다시 마주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EPA=연합뉴스]

그러나 미국의 압박에 네타냐후 정부가 순순히 따르지는 않을 분위기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 이스라엘 언론은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현재의 고강도 전쟁 단계에서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더 정밀한 표적 공격에 집중하는 단계로 바꾸자는 논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또 가자지구 전후 계획을 논의하자는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이스라엘군 수뇌부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가자 남부 칸 유니스 병원 인근 공습[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 가자 남부 칸 유니스 병원 인근 공습[AF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의 거취도 변수다. 가디언은 그가 총리직을 지키기 위해 종전을 원치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전쟁이 끝나면 현재의 전시 연정 내각이 해체되는 한편 팔레스타인이 관여하는 어떤 가자지구 해법도 그가 이끄는 극우연정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해석이다.

공세 수위 높이는 이스라엘...레바논과의 충돌로 긴장고조

이스라엘은 국내외의 압력에도 계속 공세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특히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소탕전의 고삐는 다소 늦추는 반면 중부에서 공격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하마스 요원들이 피난민 등으로 가장해 중부 지역으로 빠져나갔다는 판단에서다.

전차에 포탄을 탑재하는 이스라엘군 병사[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전차에 포탄을 탑재하는 이스라엘군 병사[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최근 이스라엘군은 중부의 부레이즈, 마가지, 누세리앗 난민촌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수십 명이 숨졌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이스라엘군의 폭격 이후 부레이즈 난민촌 등지에서 발생한 사망자 131명이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알아크사 병원에 접수됐다고 밝혔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난민촌 공습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나타내고 이들 지역의 인도주의적 상태가 이미 재앙 수준인 데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자 북부 지역 자발리아 난민촌 주민들 시체들[로이터 캡처]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자 북부 지역 자발리아 난민촌 주민들 시체들[로이터 캡처]

또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0명 사망 공습으로 남부 최대 도시 칸 유니스에서 피란민들이 묵고 있던 집이 폭격당해 20명이 숨졌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하마스 상대 전투가 "복잡한 지역"에서 벌어져 "여러 달 더 계속될 것"이라면서 "1주일이든 또는 몇 달이 걸리든 하마스 지도부에 닿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레바논의 親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War on the Rocks 캡처]
레바논의 親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War on the Rocks 캡처]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이스라엘로서는 '골칫거리'다.  이스라엘 북부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헤즈볼라는 개전 직후부터 하마스와의 연계 차원에서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자극해왔다.

AFP 통신의 자체 집계 결과 개전 이후 이스라엘 반격에 따른 레바논 측의 사망자 수는 최소 150여명으로, 대부분이 헤즈볼라 대원들이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전쟁 양상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헤즈볼라의 이런 도발에 대해 이스라엘은 강력 대응해왔다. 지난달 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와 해군 기지를 겨냥해 최소 34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이 공격은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성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격으로 앞으로도 확전의 불씨로 계속 남을 전망이다.

이란, 확전 열쇠 쥐고 영향력 행사... 5차 중동전으로 번지나

'이란 변수'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개전 이후 중동 지역 긴장이 헤즈볼라, 후티 반군(예멘) 등 친이란 무장세력의 가세로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중동 곳곳에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이란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EPA=연합뉴스]
이란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EPA=연합뉴스]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후티다. 특히 후티에 의한 '홍해 리스크'는 전 세계적인 물류대란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 실제로 홍해 항로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 상품 무역량의 약 12%를 차지하는 주요 해상 수송로다.

홍해서 예멘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스트린다호[AFP/게티이미지 제공]
홍해서 예멘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스트린다호[AFP/게티이미지 제공]

이에 후티는 선박들을 후티가 납치하거나 탄도미사일로 공격하는 사례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세계 1위 해운사 MSC를 비롯해 머스크(2위), CMA CGM(3위), 하파그로이드(5위), 에버그린(7위), 한국 HMM(8위), 양밍해운(9위) 등 10위권 선사가 줄줄이 홍해 통과를 중단하거나 우회 항로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이에 컨테이 개당 운송요금이 1300만원으로 치솟고, 136조3000억원 어치의 화물이 우회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맞서 미국 주도로 다국적함대가 출범했지만, 활동은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이나 드론(무인기)를 요격하는 정도로 제한적이다. 

홍해 상공에서 후티 반군 드론을 요격했다는 내용의 이스라엘군 X[X캡처]
홍해 상공에서 후티 반군 드론을 요격했다는 내용의 이스라엘군 X[X캡처]

이란은 후티와 헤즈볼라 등 후원세력을 앞세워 이스라엘과 미군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도, 직접 개입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근 시리아 주둔 이란혁명수비대(IRGC) 대장인 준장이 이스라엘에 피살되면서 '시온주의자'(이스라엘)들에 대한 복수를 공공연히 천명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장성 라지 무사비(왼쪽)[타스님뉴스/AFP 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장성 라지 무사비(왼쪽)[타스님뉴스/AFP 연합뉴스]

여기에다 이라크와 시리아 주둔 미군에 대한 잇단 공격도 자칫 확전 가능성을 부추긴다. 지난달 말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가 이란과 연계된 무장세력의 드론 공격으로 미군 3명이 부상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보복 공습을 지시했다.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국경을 따라 포진한 시리아군기지들을 공습했다[Times of Israel 제공]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국경을 따라 포진한 시리아군기지들을 공습했다[Times of Israel 제공]

CNN 방송은 앞으로 미군 전사자가 발생하거나 함정 등 해군 자산이 타격을 받으면 미국이 중동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오랫동안 대테러 전문가로 활동한 크리스토퍼 올러리(Christopher O'Leary) 수판그룹 수석부사장은 CNN에 중동 지역 정세가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악화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전단[미 해군 제공]
미국 해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전단[미 해군 제공]

올러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역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칭 '저항의 축', 즉 대리세력을 내세운 이란의 전략 가운데 일부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란이 대리세력을 통한 공격을 확대할 경우 이라크와 시리아 주둔 미군도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AP=연합뉴스]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AP=연합뉴스]

오는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도 중동사태의 향방을 가늠하는 변수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에서 미국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확전을 피하려는 바이든으로서는 대선 가도에 이런 비난과 요구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러나 제5차 중동전으로 확대될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엇갈린다. 대다수는 가능성이 낮다는 데 동의한다.

가능성이 낮은 이유와 관련해 중동 전문가인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10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5차 중동전은 없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전쟁이었고, 이번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비국가 단체, 하마스 혹은 헤즈볼라와의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오른쪽)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오른쪽)의 궤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오른쪽)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오른쪽)의 궤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최 교수는 이어  "지금 주변에 있는 아랍 국가들은 이미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며 "시리아 정부는 아직 내전이 안 끝나서 지금 내전 회복해야 되는 상황이고 레바논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할 힘이 없다"고 전했다. 이란에 대해서는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몰래 도와줄 수는 있어도 이란이 이번 전쟁에 공개적으로 참전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제5차 중동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낮을 뿐이지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