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무트 참호 지나는 우크라이나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바흐무트 참호 지나는 우크라이나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새해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전황에 큰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의 기습침공(2022년 2월 24일)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전문가가 내놓은 예측이다.

'밑빠진 독'으로 변모한 對우크라 지원... 서방 피로도와 불신감 고조

개전 초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이에 고무된 서방은 큰 균열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바흐무트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포격을 하는 우크라이나 전차[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바흐무트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포격을 하는 우크라이나 전차[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 미사일 등 전세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 첨단무기들의 지원이 이어졌다. 

러시아군 표적을 향해 발사되는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시스템[WSJ 캡처]
러시아군 표적을 향해 발사되는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다연장로켓시스템[WSJ 캡처]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하에서 민생안정을 뒤로한 채 '밑빠진 독'처럼 이어진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불만과 피로도가 서방진영에서 폭발 직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에도 우크라이나는 전세를 뒤집는 데 실패했다.

드니프로강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병사[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드니프로강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병사[AP=연합뉴스 자료 사진]

특히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이 호언장담하면서 지난 6월 개시한 '대반격'은 주요 점령지 탈환은커녕 교착 상태를 면치 못한 실정이다.

제공권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네덜란드 등 서방이 지원 의사를 밝힌 F-16 전투기 전력화 노력도 전과로 이어지는 데 실패했다.

이에 '퍼주기' 지원에 반기를 들어온 공화당 주도의 미 의회는 제동을 걸었다. 

네덜란드 공군기지에 계류 중인 F-16 전투기 앞에 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과 마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오른쪽)[AP 캡처]
네덜란드 공군기지에 계류 중인 F-16 전투기 앞에 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과 마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오른쪽)[AP 캡처]

이런 와중에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전(10월 7일)도 그동안 최우선이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이 뒷전으로 밀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여기에다 전황을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크림반도 점령지 탈환작전도 사실상 실패했다. 이를 위한 전초전인 드니프로강 유역 확보와 이에 따른 도강작전도 아무런 진전없는 상태다.

진흙탕에 빠진 러시아 탱크…진흙 퍼내는 굴착기[Liveuamap 트위터 캡처]
진흙탕에 빠진 러시아 탱크…진흙 퍼내는 굴착기[Liveuamap 트위터 캡처]

또 겨울철 땅이 진흙밭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베즈도리자) 시기가 찾아와 사실상 기동을 못한 채 참호에 은신할 수 밖게 없는 것도 우크라이나로서는 악재나 마찬가지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젤렌스키는 방미를 통해 지원 확대를 요청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데 실패했다. 

백악관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AP=연합뉴스]
백악관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AP=연합뉴스]

반면 러시아는 오히려 공세 강화에 나섰다. 특히 지난 6월 '일일천하'로 끝난 민간 용병그룹 바그너그룹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했다. 푸틴은 아예 내년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푸틴은 이런 여세를 몰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강도를 높이도록 지시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습 강화를 이어가도록 했다.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AP 캡처]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AP 캡처]

이를 반영하듯 러시아는 지난달 29일 수도 키이우, 오데사 등을 겨냥해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했다. 러시아군은 전략폭격기 18대를 동원, 미사일 122발을 쏟아내고 자폭드론도 36대가 동원했다. 이 과정서 최소 30명이 숨지고 160명 이상이 부상했다. 또  학교와 산부인과 병원, 쇼핑센터, 아파트 등 민간시설이 파괴됐다.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주거용 건물들[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주거용 건물들[로이터=연합뉴스]

美, 우크라 전략에 큰 변화... '완전 승리'서 '협상시 우위 확보'로 전환

전황이 교착 양상을 이어가자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전략도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 승리'에서 '종전 협상서 유리한 위치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美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 협력 호소하는 바이든[AP=연합뉴스]
美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 협력 호소하는 바이든[AP=연합뉴스]

한 마디로 공세전략에서 탈피 방어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폴리티코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미국과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이 이를 위해 군(軍)을 반격 위치에서 동부 지역에 있는 러시아군에 대한 강력한 방어 위치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 방공 시스템 강화 ▲ 철조망과 대전차 장애물 등으로 우크라이나 북부 벨라루스 방면 국경을 요새화 ▲ 우크라이나 자체 방위산업 재건 등이 포함돼 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미국의 첨단 지대공미사일 체계 '나삼스'ㅒ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의 첨단 지대공미사일 체계 '나삼스'ㅒ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렇게 방어 태세로 전환할 경우 자원을 보존하면서 러시아의 진전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이 전쟁은 협상을 통해서만 끝낼 수 있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 상황이 왔을 때 우크라이나가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연장 로켓포 발사하는 러시아군[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다연장 로켓포 발사하는 러시아군[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어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있길 희망한다"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새 공격을 시작하는 것을 막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EU 외교 소식통도 우크라이나를 방어 태세로 전환하는 것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절차를 가속하는 움직임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협상 시 우크라이나를 최상의 위치에 놓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공격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모습[게티이미지 제공]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공격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모습[게티이미지 제공]

폴리티코는  "이 협상은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러시아에 내주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BBC "새해에도 전쟁 끝나지 않을 것"... 세 가지 가능성 제시

한편 영국 BBC 방송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전쟁 향배와 관련해 흥미로운 세 가지 가능성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2024년의 세 가지 가능성'(Ukraine War: Three Ways the Conflcit Could Go in 2024)라는 제목에서 BBC는 향후 1년 동안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관해 군사 전문가 3명의 의견을 소개했다.

러시아군을 향해 기관포를 발사하는 우크라이나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군을 향해 기관포를 발사하는 우크라이나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우선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 전쟁학과의 바버라 잔체타(Barbara Zanchetta) 선임 강사는 "전쟁 종료 전망은 여전히 어둡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년 전에 비해 정치, 군사적으로 더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장 상황도 불확실하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겨울 공격을 멈춘 듯하지만 러시아도 돌파구를 만들지 않고 있다"며 "전쟁의 결과는 멀리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결정에 달렸다(More than ever, the outcome depends on political decisions made miles away from the centre of the conflict - in Washington and iinBrussels)"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파괴된 러시아 전차[로이터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파괴된 러시아 전차[로이터 캡처]

군사적 우위에 따른 승패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과 EU의 '정세 판단'과 '결심'에 전쟁의 향방이 달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또 일단 서방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간 전쟁 관련 장기적 합의는 독재 국가에 비해 항상 더 복잡했다"며 "새해는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내년에 질질 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무한정 갈 순 없다"며 "현재로서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협상 타결"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공습을 받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손상된 러시아 함정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공습을 받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손상된 러시아 함정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AFP=연합뉴스]

마이클 클라크(Michael Clarke)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전 소장은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산업화 시대 전쟁이 돌아왔음을 보여줬다(marked that facat that industrial-age warfare had returned too)"며 "내년엔 북한·이란의 무기 공급자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서방 지원국들이 산업화 시대 전쟁의 방대한 수요를 맞출 능력과 준비가 돼 있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측이 전략적 주도권을 노리는 동안 정지된 상태로 싸울 수 있다"며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를 차지하기 위해 밀고 나가려 하고, 우크라이나는 흑해 통제권을 되찾은 것을 이용하는 한편 군사 기습을 더 많이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에 정박한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들[러시아 국방부 제공]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에 정박한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들[러시아 국방부 제공]

그는 "본질적으로 2024년은 양국 모두에 전력 강화의 해(But in essence, 2024 looks lke being a year of consoliation for both Kyiu and Moscow)"라며 "러시아는 2025년 봄까지는 전략적 공세를 펼칠 장비나 훈련된 인력이 부족하고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재정과 군사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산업화 시대 전쟁은 사회간 투쟁"이라며 "내년 전쟁의 군사적 진로는 최전선이 아니라 양국과 미·EU·중국·이란·북한의 수도(정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에서 전투중인 우크라이나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에서 전투중인 우크라이나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벤 호지스(Ben Hodges) 전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압도할 결정적인 능력이 없으며 현재 차지한 부분을 지키려 힘쓰면서 서방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잃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초에 미국 의회가 지연된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를 통과시킬 것"이라며 "초여름이 되면 우크라이나에서 처음으로 미국 F-16 전투기가 사용되면서 러시아 항공기 대응 능력이 향상되고 자체 방공망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스톰섀도'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촌하르' 다리 모습[WSJ 캡처]
우크라이나군이 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스톰섀도'에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촌하르' 다리 모습[WSJ 캡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점령지 중 전략적으로 중요한 크림반도 주변에서 러시아 군을 압박할 것이고, 이미 최근 영국이 준 '스톰 섀도' 순항미사일 단 3발로 세바스토폴 주둔 함대 3분의 1을 철수하게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동원예비군 훈련장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동원예비군 훈련장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한편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기존 점령지에 더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추가로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점령 지역을 '새 영토'로 편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푸틴은 지난달 1일 병력 17만명을 늘리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러시아군 전체 병력 규모가 기존 115만명에서 132만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드니프로강 인근에 깊게 참호 파는 러시아군[타스=연합뉴스]
드니프로강 인근에 깊게 참호 파는 러시아군[타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