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에케크라테스와 파이돈의 대화는 계속된다. 

에케크라테스 : 그랬군요. 그러면 파이돈,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을 마감하셨나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떤 행동을 하셨나요? 친구들 가운데 그분 곁에 있었던 이들은 누구누구였나요? 아니면 관원들이 허용하지 않아, 친구들도 없이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나요? 

파이돈 : 여러 명이 그분 곁에 있었어요.  

에케크라테스 : 그러면 그때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전해주시면 고맙겠소. 그대에게 혹시 바쁜일이 없다면 말이요.

파이돈 : 나는 바쁘지 않으니,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이야기 해 보도록 하지요. 나는 그 분 곁에 있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분께서는 태도로나 말씀으로나 내게는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그분께서는 고상하게 생을 마감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저승으로 가는 동안에도 신의 가호를 받으실 것이고, 저승에 이르러서도 잘 지내실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그런 슬픈 자리에서 느낄 법한 연민의 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예요. 그런가 하면 나는 우리가 여늬 때처럼 철학적 담론(그 때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런 종류였으니까요.)에 열중해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어요.    
소크라테스 선생께서 곧 생을 마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주 묘한 느낌이 나를 엄습했는데, 그것은 즐거움과 고통이 혼합된 아주 이상한 감정이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모두 거의 같은 느낌이 들어 웃다가 울다가 했지요. 특히 한 명이 심했어요. 아폴로도로스 말에요. 그 사람과 그의 태도는 그대도 알고 있겠지요. 

에케크라테스  : 물론 알고 있지요

파이돈 : 그는 완전히 자제력을 잃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도 혼란에 빠졌어요.

에케크라테스 : 그런데 파이돈, 누구누구가 그 자리에 있었소? 

파이돈 : 아테네 사람으로는 방금 말한 아폴로도로스, 크리톤과 그의 아버지, 헤르모게네스, 에피게네스, 아이스키네스, 안티스테네스, 파이아니아 출신인 크테십포스, 메넥세노스, 그 밖에도 몇 명이 더 있었어요. 플라톤은 아마 몸이 아팠던 것 같아요. (플라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에케크라테스 : 다른 나라에서 방문한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나요?

파이돈 : 그래요. 테바이 사람 심미아스, 케베스, 파이돈네스와 메가라
에서 온 에우클레이데스, 데르프시온이 그 자리에 있었어요. 
  
에케크라테스 : 그러면 아리스팁포스와 클레옴브로트스도 있었나요?

파이돈 : 아니요, 그들은 아이기나 섬(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37km 떨어진 섬)에 가 있었다더군요.

에케크라테스 : 이제 말해봐요,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지요? 

파이돈 :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요. 나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하던 분들과 함께 매일같이 소크라테스를 방문했어요. 우리는 재판이 열리던 법정 옆에서 모이곤 했는데 그곳이 감옥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옥문이 열리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하루의 대부분을 소크라테스와 함께 지냈어요. 

그런데 소크라테스 선생께서 돌아가신 그날 우리는 더 일찍 모였어요.
전날 저녁 우리가 감옥을 떠날 때 델로스로 떠난 배가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우리가 감옥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는 여느 때처럼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고 자기가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문지기는 “ 11명의 옥사들이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쇠사슬을 풀어주며 오늘이 사형 날이라고 통보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잠시 후에 문지기가 우리더러 들어가라고 했어요. 우리가 들어가서 보니, 소크라테스께서는 사슬에서 풀려나 계셨고, 크산티페가 어린 아이를 보듬고 그분 옆에 앉아 있더군요.
(크산티페는 바가지 긁는 악처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아내이다.)

​( 참고문헌 )

o 플라톤 지음·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숲, 2017, p 11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