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DLF(파생결합펀드)‧라임 등 펀드 사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은행들이 떨고 있다. 이번에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 결정되는 파생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 상품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발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최근 3년 사이 반토막나면서,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의 대규모 손실 공포가 금융권을 휘감고 있다.

총 판매잔액 중 80% 이상인 15조9000억원 규모가 은행에서 팔렸다. 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상품이 시중은행 창구에서 주도적으로 판매된 것이다. 은행들은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에게도 4조6000억원어치를 팔았다.

올해 상반기에만 만기 도래 잔액이 10조원 이상일 정도로 몰려있는 가운데 이미 이달 5일부터 손실이 확정된 사례가 속속 나오는 중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 등을 시작으로 12개 금융사에 대한 순차 현장검사에 돌입한 한편 분쟁에 대비해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기준안도 마련 중에 있다.

아직 조사가 한창 진행 중으로 은행들의 불완전판매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감원은 앞서 지난해 11~12월 중 실시한 현장·서면조사를 통해 이미 일부 판매사에서 ELS 판매한도 관리 미흡, 핵심성과지표(KPI)상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 전반적인 관리체계상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밝힌 상황인 만큼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자유롭긴 어려워 보인다.

핵심 쟁점은 은행들이 과연 해당 상품을 팔면서 손실에 대한 위험성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알렸냐는 거다. 금융당국은 ELS 상품 구조에 대해서 사는 사람은 물론 파는 사람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으리라 보고 있다.

또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영업만을 우선시해 면피성이고 형식적인 절차만을 준수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적합성 원칙 등을 실질적으로 준수하지 않은 경우에는 책임 부담이 불가피하다”고도 못 박았다.

예컨대 70~80대 고령 투자자에게 수십퍼센트의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난도 상품을 권유해 놓고 자필 또는 녹취를 받아 확인을 거쳤다는 것만으로는, 은행들의 주장대로 완전판매를 했다고 볼 순 없다는 거다. 설명 여부를 떠나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맡기러 온 고령자들에게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증권사와는 다르게 은행을 찾는 금융소비자들 대부분 ‘안정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게 사실이다. 은행을 통해 투자한 금융상품의 원금이 몇 년 사이 반토막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선뜻 목돈을 맡길 금융소비자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예금보다 다소 높은 수익률을 원하면서도 안전한 재테크를 기대했을 것이다.

한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 등에선 홍콩H지수 손실과 관련해 “은행만 믿고 가입했다가 잠도 못 자고 피가 마른다. 은행에서 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권하는 것이냐”, “이자라도 높으면 말을 안 한다. 정기예금과 비슷한 4~5% 수준”, “정기예금 상품 문의하러 갔다가 직원 권유로 가입했다. 원금비보장이라길래 놀라니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고 걱정말라던 그 직원은 승진해서 다른 곳으로 갔다”는 등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향한 원망과 푸념의 글들이 넘쳐난다.

사실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11월 DLF 사태를 계기로 원금손실 가능성이 20%를 초과하는 고난도 사모펀드 및 고난도 신탁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없애려 했다. 그러나 40조원 이상의 신탁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한 달 만에 ‘제한적 허용’으로 뒤집었다. ‘고객이익 보호’ 중심의 영업을 전제로 대표국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공모형 ELS를 담은 신탁(ELT)에 한해 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이때 허용된 5개 기초자산 주가지수 중 하나가 홍콩H지수다.

DLF 사태 이후에도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펀드까지 불완전판매 논란 속 배상비율과 CEO 중징계 문제로 수차례 홍역을 치렀다. 그럼에도 홍콩H지수 ELS 사태까지 은행들이 판매 행태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아 또 문제가 커진 것이라면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관리·감독을 소홀히한 금융감독의 책임은 은행보다 더 무거울 것이며 ‘은행 말만 믿고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 원칙으로, 최종 결정에 따른 이익의 기쁨도 손실의 아픔도 오롯이 본인 몫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자 값비싼 수업료를 치러놓고도 금융사, 금융당국, 투자자 모두 DLF 사태 등의 교훈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