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안종열 기자.
글로벌경제신문 안종열 기자.

 

정부가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건설을 추진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622조원을 투입한다. 약 650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단골 소식인 기술 유출 위협에 따른 것이다. 지난 15일에도 반도체 기술 유출 보도가 쏟아졌다. 

구체적으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 연구원 A씨는 2014년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20나노 D램 반도체 기술 공정도 700여개를 무단 유출했다. A씨는 이 공정도를 현재 몸담고 있는 중국 기업 청두가오전이 제품 개발에 사용하게 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이외에도 경찰은 반도체 기술인력의 대규모 중국 유출 정황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청두가오전 의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임직원들을 대거 빼내 중국 측으로 옮겨가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는 컨설팅 업체와 헤드헌팅 업체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이같은 기술 유출로 인한 타격은 상당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장섭 의원실이 최근 특허청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84건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반도체가 29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의 경우 기술적으로 유출이 쉽지 않지만 워낙 경쟁력이 있다 보니 주 타깃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액도 무시 못한다. 국정원 자료에 의하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기술유출에 따른 기업의 피해는 25조원에 달했다. 

기술 유출이 반복되는 이유로는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이장섭 의원실이 확보한 법원의 판결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55명이 법원에 접수됐다. 같은 기간 동안 실형으로 이어진 사람은 9명, 무죄 선고는 29명, 집행유예가 36명으로 나타났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따른 피해규모에 비해 양형기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TSMC가 속해있는 대만은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로 간주해 더욱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 국가 핵심 기술을 중국 등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받는다. 벌금은 대만달러 500만 위안 이상 1억 위안(42억원) 이하 등이다. 미국 역시 ‘경제 스파이법’을 통해 국가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한다. 피해액에 따라 징역 30년형 이상까지도 가능하다. 벌금은 최대 500만 달러(약 65억 원)다. 

사실 기술 유출은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힘들다. 정부와 국회,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대 특단의 방안을 갈구해야 한다. 정부는 무관용 엄벌주의를 실현하고, 국회는 표류하고 있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기업은 연봉 등 처우와 자체적인 관리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산업기술의 국외 유출은 현대판 매국 행위다. 단순 일개 기업의 기술력이 넘어간 것으로 치부하면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