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 K-게임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곱지 않다. 이른바 'K-가챠'라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매서운 과금 체계(BM)로 인해 선뜻 게임을 즐길 엄두가 안 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넥슨의 확률 조작 이슈까지 번지면서 한국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다수 국산 모바일 게임들이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BM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구글플레이 매출 차트 상위 20위권으로 좁혀봐도 장르를 망라하고 거의 모든 게임들이 가챠를 주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게이머들이 유독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발이 거센 이유는 무얼까. 이는 극악의 낮은 확률과 비효율적인 과금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엔씨소프트 대표 게임 '리니지M'의 경우 영웅 등급 뽑기의 확률은 0.07% 불과하다. 원하는 특정 영웅을 뽑기 위해선 0.0009%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에 도전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이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높은 등급의 캐릭터는 대체로 게임 플레이로는 획득이 불가능하고 뽑기로만 얻을 수 있다. 성능이 압도적인 만큼 일단 뽑기만 하면 단숨에 앞지를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에 수백만원의 매몰비용이 생겨도 중간에 포기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게임이 캐릭터 뽑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비 강화, 장비 뽑기, 장비 옵션 변경, 컬렉션 등 뽑기가 시스템 전반에 걸쳐있다는 점도 유저가 판도라의 상자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도 리턴 효과는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몇몇 게임에선 연 1회 주기로 페이백(유료 재화 환급)을 실시하거나 일정 뽑기 횟수를 달성하면 해당 캐릭터를 지급하는 천장 제도(마일리지)를 도입하기도 한다. 언뜻 과금을 완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시프트업의 주력작 '니케'의 경우 천장 200회의 뽑기 횟수를 채우려면 단순 현금(패키지 제외)으로 환산 시 약 120만원의 지출이 필요하다. 캐릭터 하나를 뽑기 위해선 운이 나쁘다면 최신형 스마트폰, 노트북 한 대값이 나가게 되는 셈이다. 

비단 낮은 확률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스템과 게임성에 가챠만 씌운 동종의 유사 게임들이 많다는 것도 국내 게임 업계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까지 출시된 국산 모바일 MMORPG 장르 신작들은 '리니지 아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규제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확률 정보 미표시와 거짓 확률 표시 등 위반 사례를 단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이와 별개로 국내 게임사들의 BM에도 불가피한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과 거부감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률 조작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맡은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에서 문제로 지목된 '큐브'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는 메이플스토리 매출의 30%을 차지하는 주 수익모델로 꼽힌다. 넥슨은 잃어버린 이용자 신뢰 회복을 위해 기존 확률형 아이템의 역할을 현금 구매가 아닌 인게임 재화로 대체하는 강수를 뒀다.

확률형 아이템은 모바일 게임이 훈풍을 타면서 근 10년이 넘도록 게임사들의 곳간을 든든히 책임져 왔다. 그러나 수익의 단맛에 취한 국내 게임사들이 신작과 BM 전략에 있어 그간 도전보다는 안정을, 해외보다는 내수에 집중해 왔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필연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수 시장은 현재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다. 다행인 것은 국내 게임사들이 뒤늦게라도 일제히 글로벌로 시선을 돌려 BM을 비롯해 장르·플랫폼 다변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엔씨의 MMORPG '쓰론 앤 리버티'의 경우 BM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배제하고 '게임 패스'를 적극 도입하는 등 개선된 모습이 확인된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흥행 기대감도 싹트는 분위기다.

올해 국내 게임사들은 주 수익모델인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정부 규제에 쫓기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나서 혁신을 일궈내야 한다. 또 BM에 대한 포커싱을 줄이고 게임의 본질인 재미에 더욱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 2024년은 글로벌로 선보일 K-게임들이 가챠의 '매운맛' 대신 해외 팬들에게 참신한 '게임성'으로 각인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