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태양광 발전 시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독일의 태양광 발전 시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유럽 태양광 패널 시장이 값싼 중국산 제품에 사실상 잠식되면서 현지 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덤핑 과세 등 긴급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유럽연합(EU)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태양광 패널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사실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메이리드 맥기네스 EU 집행위원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 출석해 "우리가 현재 EU 태양광 설치 목표 달성을 위해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잠재적인 조처는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따져본 뒤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당장은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맞서 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추가 조처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맥기네스 집행위원은 '탄소중립산업법'(NZIA) 제정을 위한 최종 3자 협상이 6일 실시된다고 언급하면서 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수단이 이미 충분히 있거나 계속 마련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두고 유럽 산업계의 강한 반발이 뒤따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강소성의 태양광 패널 공장 근로자들의 모습[AFP/게티이미지]
중국 강소성의 태양광 패널 공장 근로자들의 모습[AFP/게티이미지]

실제로 업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럽태양광제조협의회(ESMC)는 지난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EU 주요 태양광 발전 모듈 제조업체와 이들의 하청업체들은 향후 4∼8주 이내에 실질적인 긴급 조처가 이행하지 않는 한 생산라인을 폐쇄하기 직전"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유럽 업체들은 유럽산 제품 생산 단가보다 저렴한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면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업계는 중국 당국의 공격적 보조금과 물량 공세가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고 있다며 EU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EU의 NZIA 지원 대상에 태양광 산업이 포함됐지만, 당장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NZIA는 청정 산업 관련 제3국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태양광 등 전략적 기술 분야에 보조금 규제 완화, 신규 사업 신속 허가 혜택을 주는 법이다.

스위스 제조업체인 '마이어 버거'의 경우 단기간 안에 적절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독일 내 공장을 미국으로 아예 이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EU 전문매체인 유락티브는 보도했다.

맥기네스 집행위원도 이날 "2023년 이후 태양광 패널 가격이 40% 이상 급락했다"면서 "유럽 제조업체엔 분명한 도전"이라고 어려움을 인정했다.

중국 시안의 태양광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 시안의 태양광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러나 중국산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상황에서 업계 요구대로 추가 조처를 한다면 '제 발등 찍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게 집행위 입장이다. 집행위에 따르면 현재 EU는 태양광 패널의 97%를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이날 유럽의회 의원들은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집행위를 향한 적극 대응을 촉구했다.

마리아 다 그라카 카르발로 유럽국민당(EPP) 의원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EU는 태양광 패널 및 관련 부품 시장을 선도했지만, 이제는 중국에 의해 사실상 독점되고 있다"면서 "향후 미래에 지금을 되돌아보며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투자를 강화하고 우리의 관여를 확대하기 위한 긴급 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우헬 좌파연합(GUE/NGL) 의원은 "지난 2013년 당시 집행위가 공정경쟁 이슈에 느슨하게 대응하면서 유럽 태양광 패널 산업이 이미 망가졌다"면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하며, EU 내에서 제조되지 않은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조금도 지급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