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악법도 법이다.(惡法도 法이다. 라틴어: Dura lex, sed lex, 
영어: It is harsh, but it is the law.)”

이 말은 성인(聖人) 소크라테스(BC 470~399)가 독배를 마시면서 한 명언(名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은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BC 427~347)이 전하고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다룬 플라톤의 책,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어디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글귀는 안 나온다.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유한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 ... 하지만 살날이 얼마나 남지 않은 것 같은 노인이 뻔뻔스럽게도 가장 중요한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탐욕스럽게 삶에 집착한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크리톤) 나는 할 말이 없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만두게나, 크리톤. 그리고 법률이 권하는 대로 하세. 신께서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하시니까.” (『크리톤』의 마지막 부분)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도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기억해두었다가 그 분께 빚진 것을 꼭 갚아주게”였다. ( 『파이돈』의 마지막 부분) 
그렇다면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어떻게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와전 혹은 왜곡되었을까? 

먼저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서기 3세기경 로마의 법학자 도미누스 울피아누스이다. 
그는 자연법 사상의 대변자인데 그의 책 말미에 실정법 사상의 표어인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나온다.  

원문은 “그것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인데, 이 말은 노예를 해방시켜 주려는 사람들에게 노예 해방을 금지시킨 법조문을 상기시키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실정법 사상이란 집단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는 현행법이 비록 악법일지라도 준수해야 한다는 법사상이다. 이 입장은 실정법 체계가 완전무결하다는 전제에 입각한 사상이다. (반면에 자연법 사상은 현행법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인간의 사회질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근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 사상이다.)  

그런데 근대의 실정법 사상은 19세기에 국가의 권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입장은 독일에서 성행했고, 나중에 독일의 법체계를 받아들인 일본도 실정법 주의가 주류였다. 따라서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한 한국도 실정법 주의가 대세였다.  

한편 실정법 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당사국들이 전쟁을 뒷 받침 하기 위한 국민총화 단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인권 유린을 정당화 하기 위한 근거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김주일 지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웅진
씽크빅, 2005, p 129-131)

그러면 어떻게 ‘악법도 법이다’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와전 혹은 왜곡되었을까? 

그 단초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제공했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法哲學)』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어서 도모오는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라고 설파했다.

(계속)